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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tero의 한글 표기: ‘조테로’는 틀리지 않았다

이 포스트에서 나는 파이어폭스 애드온에서 시작한 참고문헌 관리 소프트웨어의 이름인 Zotero의 한글 표기에 ‘테어’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당연히 ‘조테로’라고만 말하고 써 왔고 다른 가능성은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것은, Zotero는 ‘조테로’가 아니라 ‘조테어’라고 언급한 블로그 포스트를 우연히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조테어’라는 표기는 Zotero 홈페이지 첫머리의 소개글에 명시된 [zoh-TAIR-oh]라는 발음 설명에서 비롯한 듯하다. ((정말 이것을 충실하게 따랐다면 ‘oh’에 해당하는 표기도 있어야 할 터이다. 그러나 2012년 5월 23일 현재 구글 검색에서 ‘조테어’의 결과는 500 건 이상인 반면 ‘조테어로’나 ‘조테어오’의 결과는 0 건이다. 하지만 어쨌든 ‘테어’의 연원을 TAIR 이외에서 달리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후의 논의에서는 ‘테어’가 홈페이지에서 언급된 TAIR에서 나왔다는 가정을 유지하겠다.))

일단 Zotero의 발음을 국제음성문자로 표시한 문건을 찾아보았다. 위키백과 영문판 항목에는 /zoʊˈtɛroʊ/라고 되어 있다.  The Ideophone이라는 블로그의 “The etymology of Zotero”라는 포스트에서는, 영어 사용자라면 대부분 [ˌzɔˈtɛɹoʊ]라고 발음하고 있으리라고 서술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외래어 표기법」 제2장의 표기 일람표를 따르자면 ‘조테로’라고 표기하게 된다.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이 ‘원음’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불신하는 이라면 ‘조우테로우’라고 적을 수도 있을 터이다.)) ‘테’ 뒤에 ‘어’를 넣을 이유가 없다.

물론 이러한 ‘외부인’의 시각보다 ((위키백과 영문판 항목에서 국제음성문자를 처음 사용한 버전이나 현재의 표기로 바꾼 버전을 작성한 이들이 Zotero 개발에 관여한 것 같지는 않다.)) 개발자 본인의 설명을 더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Zotero는 이러한 입장에서도, 아니, 이러한 입장에서야말로 더욱 ‘조테로’가 된다. 위키백과에 나온 국제음성문자 표기야말로 홈페이지의 발음 설명을 충실히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zoh-TAIR-oh]는 발음기호가 아니라, 영어 사용자가 발음을 유추할 만한 영어 단어의 철자로 표기된 것이다. 이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가 철자 AIR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가 유추하는 것과 같다는 보장이 없다.

여기에 비유할 만한 상황으로 한국어의 예를 들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한국어 사전에서 ‘신랄하다’를 찾으면 [실—]이라고 나온다. 즉, ‘신랄’이라고 쓰고 [실랄]이라고 읽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어 사용자라면 [실랄]을 보고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특히, ㅅ와 ㄹ을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동으로, [사랑]의 ㅅ와 ㄹ과는 다르게 발음한다. 그런데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접하여 ㅅ는 s로, ㄹ는 r로 대응된다는 지식이 있는 영어 사용자가 [실랄]이라는 발음 설명을 보았다고 해 보자. 이 학습자가 한국어에서 ㅅ와 ㄹ의 발음이 출현 환경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모르는 채 각 부분을 기계적으로 대응시키기만 한다면 이 단어를 ‘sirrar’이라고 표기하고, 심지어는 이러한 표기를 다시 영어 철자에 유추해서 ‘신랄’의 [실]을 영어의 ‘sir’처럼 발음할지도 모른다. 즉, 국제음성문자가 아니라 해당 언어의 철자로 발음을 유추하도록 한 설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해당 언어의 자음과 모음이 출현 환경에 따라서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Zotero를 [zoh-TAIR-oh]라고 쓴 의도를 살펴보자. TAIR라는 설명이 없을 때 영어 사용자들은 철자 ‘er’나 ‘ero’를 보고 ‘ter’를 ‘butter’에 나온 것처럼 발음하거나, ‘ero’를 ‘hero’에 나온 것처럼 발음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TAIR의 주된 의도는 철자 e를 ‘butter’나 ‘hero’ 에서와는 달리 ‘air’의 모음과 같이 /e~ɛ/로 발음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어 사용자와는 달리 철자 e에서 ‘에’를 가장 먼저 생각할 가능성이 클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이것이 신기한 일이 아니다. 대신 한국어 사용자들은 뜻밖에도 /e/ 뒤에 /ə/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air’를 ‘에어’로 표기하는 데서 이러한 유추가 쉽게 일어날 것이다.

‘air’의 발음은 영국 영어(용인 발음; Received Pronunciation)에서는 /ɛə/, 미합중국 영어(General American)에서는 /er/이다. ((

Giegerich, Heinz J. English Phonology: An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63면.

)) ((사전에서는 다르게 표기하기도 한다. 팜톱에 설치된 영어사전 네 종류에서 ‘air’를 각각 찾아본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사전 영국 미국
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eə(r) er
Collins Cobuild Advanced Dictionary of English 구분 없이 eər
Cambridge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r er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구분 없이 ɛː

)) ‘어’라고 쓸 만한 모음은 영국 영어에만 있는 셈이다. 미국 영어라면 ‘어’를 쓸 필요가 없다. Zotero가 합중국에서 개발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외래어 표기법」 제3장 제1절 영어 표기에 나온 사례에 표기된 발음이 다 영국 영어식이니까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표기는 용인 발음을 따르겠다고 명시한 구절을 찾지는 못하였다.)) 영국 영어를 따라서 ‘어’를 넣겠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영어 음소 /ɛə/가 나타나는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air’, ‘hair’, ‘bear’ 등에서는 /ɛə/가 단어 끝에 나타나지만, Zotero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모음 앞에서 나타나는 경우 /r/이 발음되고 ((위의 책, 66면. “Nonrhotic accents do have postvocalic /r/ if it is at the same time part of a syllable onset rather than a rhyme; in other words, if it is intervocalic.”)) /ə/가 사라진다. ((같은 곳. “The vowel phonemes that occur in this context are essentially those of the basic system rather than the ones of the secondary system given in table 3.5. Thus we can get /ir/ (lyrics), /ɛr/ (herring), /ʌr/ (hurry), /ar/ (marry) etc. (강조는 인용자)”)) 즉, 영국 영어식 발음을 따르더라도 ‘어’를 넣을 이유가 없다. ‘Mary’를 ‘메어리’가 아니라 ‘메리’라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어 사용자의 발음에서 ‘어’스러운 소리가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혀가 e에서 r로 이동하는 사이에 ə의 위치를 지나다 보니까 있을 수 있는 경우이지, 영어 사용자가 e와 r 사이에 ə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것을 발음해야겠다고 작정해서 나온 소리는 아니다.))

박정근의 인증 거부를 지지하며

박정근북한의 조국통일평화위원회에서 운영한다고 알려진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한 일로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혐의를 받고 2011년 9월 21일 집과 가게가 압수수색이 된 뒤 여러 차례 경찰조사를 받은 끝에 2012년 1월 11일에 구속되었다.

리트윗의 맥락과 박정근의 정치적 성향을 보았을 때 그에게 찬양고무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그동안 여러 곳에서 계속 나왔다. ((박정근이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가 부적절한지를 인증하지 않았음을 지지하는 포스트이므로, 이 문장에서만큼은 맥락과 성향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에 대한 링크를 생략하겠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 어쩌다가 농담 때문에 꽉 막힌 국가권력의 핍박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쉽게 떠오르는 동시에, 여러 현장에서 연대해 온 좌파정당 활동가가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정권의 탄압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호응을 얻고 있다. ((박정근의 구속영장에 찬양고무보다 연대활동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는 트윗이 100회 이상 리트윗되었으나, 실제로 구속영장에 첨부된 범죄사실의 요지에는 ‘이적표현물 384건을 취득·반포하고, 북한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글 200건을 작성[하여] 팔로워들에게 반포하였으며, 학습을 위하여 이적표현물인 북한 원전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을 취득 보관’했다는 찬양고무에 대한 내용밖에 없다. 연대활동을 언급한 것은 압수수색영장이다.))

별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만만해서 걸렸다는 것이든 바른 일을 하다가 국가의 눈 밖에 나서 걸렸다는 것이든, 박정근이 ‘당해도 싼 짓’을 하지는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당해도 싼 짓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당해도 싼 짓이 따로 존재함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이 주장이 누가 어떠한 짓을 하든 당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동시에 성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법이 잘못 적용되었다는 비판과 양립 가능하다. 부당한 법을 부당한 방식이나 절차로 적용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 자체도 악법이거니와, 이번 사건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근거조차 없다.’ 라고 서술하면 공안당국의 뻘짓이 더욱 부각되고 박정근이 겪은 탄압에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주지 않겠는가?

그러나 박정근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을 모조리 동원하여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일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전날인 1월 10일에 그는 자신이 종북주의자인지 아닌지를 일부러 모호하게 내버려두고는 양심의 자유가 이러한 경우에까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경찰수사 후에도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계속 리트윗하면서 서울 시내에 국가보안법 폐지 삐라를 뿌리고 현수막을 내거는 등 수사기관에 대한 도발로 보일 수 있는 일을 벌여 왔다. ((분명히 이러한 행동들은 검찰에서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터이다. 구속되기 전날 작성한 트윗을 보면 그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지만, 『한겨레』 기사를 보면 ‘도발’을 시작할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얼마나 일관되고 진지했는지를 가늠해 볼 만할 만한 자료를 더 찾지는 않겠다. 그의 일관성 및 진지함 여부는 그에 대한 처벌이 정당한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지하다고 해서, 또 진지해야만 꼭 존중받을 자격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장난이라고 해서, 또 장난이어야만 꼭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 박정근을 지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나는 종북주의자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미리 못박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 개인이 발언할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보편적인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예를 들어 ‘나도 군필이지만’, ‘내가 동성에게 성욕을 느끼지는 않지만’, ‘내 아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지만’ 같은 말부터 꺼낸 다음 군대 문화·정책이나 성소수자 차별, 입시 위주 교육 등을 비판하면 욕을 덜 먹고 심지어 ‘개념’있다는 칭찬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한 인증이 설득력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청자와 화자가 모두 특정한 자격을 내세울 수 있어야만 비판을 할 권리가 더 생긴다는 인식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상대가 특정한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고민해 보지 않은 채 당장 한 차례의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고 인증에 응한다면, 상대는 그 자리에서는 물러설지 모르나 결국 인증할 것이 없는 이들을 골라서 더욱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밝힘으로써 부당한 공격을 피하려는 것을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위험을 소수자가 아닌 이가 모두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주장도 온당하지 않고.))

박정근은 인증하지 않았다. 순결한 피해자를 자처하지도 않았다.

[언어학 개그] 내현적 수강생, 최소투사단계 대학원생

사소하지만 오랜만에 학교에서 언어학 개드립을 쳤으니 보완해서 기록해 놓자.

1_ 수업 시작 직전까지 강의실에 있던 사람이 막상 출석을 부를 때는 보이지 않아서
T: 아무개 선배 내현적(covert)이긔
S: 의미만 있고 드러난 형태가 없어!

2_대학원 강좌답지 않게 북적거리고 자리도 없어서
T: 학부생 주제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S: 당신은 곧 투사(projection)될 거니까 괜찮긔
T: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단계는 중간투사인가 최소투사인가…

+며칠 뒤에 생각해 보니 학부 졸업이라는 보충어(complement)와 대학원 합격이라는 지정어(specifier)가 필요하므로 최소투사단계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의 효과: (1) 진리치를 넘어서

노신(魯迅, 한어병음: Lu Xun, 한글 외래어 표기: 루쉰)(1881–1936)의 산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논점 세우기(立論)

노신, 1925년 작. 『들풀(野草)』에 수록.
원문: http://zh.wikisource.org/wiki/%E7%AB%8B%E8%AB%96

꿈에서 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글을 짓기 위해 교사에게 논점을 세우는 방법을 묻고 있었다.

“어렵지!”

교사는 안경 너머로 비스듬히 눈빛을 보내더니 나를 보고는 말했다.

“너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 어느 집에서 아들을 낳고는 온 집안이 뛸 듯이 기뻐했지. 한 달을 채우자 아기를 안고 나가서 손님들에게 보여 주었단다—  당연히 덕담을 들었으면 해서겠지.
어떤 사람은 ‘이 아기는 앞으로 돈을 많이 벌 겁니다.’ 라고 했어. 그래서 최고의 감사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이 아기는 앞으로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라고 했어. 그리고는 온 집안사람들에게 호되게 맞았지.
반드시 죽는다는 말은 필연적이지만, 부귀를 누린다는 말은 허황되잖아. 그런데 허황된 말을 하면 좋은 보답을 받고, 필연적인 말을 하면 매를 맞아. 너는…”

“저는 허황된 소리도 안 하고 싶고, 매도 안 맞고 싶어요.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죠?”

“그러면, 이렇게 말해 보렴. `우와! 이 아기 좀 봐요! 어쩜… 아유! 하하! Hehe! he, hehehehe!'”

1925년 7월 8일

<마지레스>허황된 소리도 하지 않고 매도 맞지 않으려면 “나는 이 아이가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부자가 되리라는 장담에 비하자면 “최상의 감사 인사”야 받지 못하겠지만, 소박한 답례 정도는 들을 수 있을 터이다.</마지레스>

노 선생은 이 이야기에서 진실을 말하는 데에 고난이 따르는 현실을 풍자하고 싶었던 듯하나, 이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은 진리치가 참인 명제라고 해서 다 유의미한 말이 되지는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하필이면 이 이야기가 덕담을 (( 오덕이나 덕후의 덕 말고. )) 요구하는 상황인 만큼, 이것이 청자에게 불쾌감을 주면 안 된다는 예의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사실, 많다. 심지어는 “청자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사실은 말하기를 보류하는 편이 좋겠지요.” 같은 “매너”로만 해석하기도 한다. )) 하지만 아래의 만화를 보면…

"내일 눈이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라는 진술은 어떤가? 이 진술은 '공허한 형식'이지만 완벽한 진리야! 맞아요. 하지만 내일의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진리죠!
『로지코믹스』(독시아디스, 파파디미트리우 글, 파파다토스, 디 도나 그림 / 전대호 역 / 랜덤하우스 코리아) 264면.

[그림 속 텍스트 시작]
러셀: “내일 눈이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라는 진술은 어떤가? 이 진술은 ‘공허한 형식’이지만 완벽한 진리야!
비트겐슈타인: “맞아요. 하지만 내일의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진리죠!”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20년간 항진명제를 생산하는 기계의 존재를 정당화하려고 비지땀을 흘린 것이었다.
[그림 속 텍스트 끝]

물론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사람은 다 죽는다.”라는 명제가 위 만화에서 말하는 항진명제에 해당하지는 않으므로, 위에서 인용한 부분을 여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 “내일 눈이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 대신 “내일의 일일강수량은 0 mm 이상 1000 mm 미만이다.”라는 명제는 어떨까? 이 명제가 참이 되는 것은 논리적 형식이 아니라 현재의 실제 세계의 조건에 근거하였으므로 러셀의 관심사는 아닐 터이지만, 이 “진리”도 내일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 어쨌든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 겪게 되는 일이고, 이 아기의 장래에 관해서는 새롭고 유의미한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이 담화에 기여할 수 있는 상황을 여러 가지로 구성해 볼 수야 있다.

(1) 부모가 망상에 빠져서 아기가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경우:
일반적인 진리를 부모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명백하므로, 부모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 (( 부모가 아기에게까지 그러한 망상을 주입하려고 들거나 아기를 어떻게 다루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학대라도 하지 않는 한 꼭 알려줄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후다닥). ))

(2) 의사가 병에 걸린 아이의 소생 가능성을 진단하는 경우:
이 때 아기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어떠한 이유로든 죽게 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진리가 아니라, 죽는 시기와 원인을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을 가리킨다.

더 가능한 상황이야 무한히 많이 있을 수 있겠으나, (1)에서처럼 일반적인 진리 자체가 명시적으로 부정된 것을 바로잡아야만 하거나 (2)에서처럼 같은 문장이라도 일반적인 진리 이상의 구체적인 의미를 더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의 상황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 어머니는 내가 아기일 때 어느 어르신에게 “닥터감”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내가 의사가 되려고 하면 될 수 있다고 20년도 넘게 믿은 듯하니까 (1)을 만족할지도 모르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아이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입니다.”를 “이 아이는 앞으로 의사가 될 것입니다.”만큼 진지하게 들을 리는 없…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으로 받아들이고 은혜로워할 것 같… 아마 안 될 거야. orz ))

/번역/ 지우마 대통령, 위험 지역에서의 주거 보장이 브라질의 ‘법칙’이라고 단언

원문 기사: Júlia Dias Carneiro, “Dilma afirma que moradia em área de risco ‘é regra’ no Brasil”, BBC Brasil, 2011.01.13. http://www.bbc.co.uk/portuguese/noticias/2011/01/110113_dilma_nova_jc_jf.shtml

적절한 보충 설명은 기회가 닿는 대로 추가할 예정.

지우마 [대통령], 위험 지역에서의 주거[보장]이 브라질의 ‘법칙’이라고 단언

줄리아 지아스 카르네이루
BBC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

지우마 호세피 대통령은 히우지자네이루 [주]에서 비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세 개 도시의 비행을 마치고 이번 목요일[2011년 1월 13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브라질에서 위험 지역에서의 주거 [보장]은 예외가 아닌 법칙입니다.”

Agência Brasil에서 피해 도시 시청의 정보를 인용하여 밝힌 바로는, 산사태로 인해 히우의 산간 지역에서 이미 450인의 사망자가 나왔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에서 저소득 인구는 완전히 방치되었는데, 거주할 곳이 없는 이들은 이제 어디에 거주합니까? 골짜기 바닥, 강기슭, 시냇가, 언덕입니다.”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Partido do Movimento Democrático Brasileiro) 세르지우 카브라우 [히우] 주지사 역시 기자회견에 참여하여 히우에서 홍수 피해가 가장 큰 세 도시(노바 프리부르구, 페트로폴리스, 테레조폴리스)가 시의 이전 행정부의 폐해를 겪었다고 말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 전임 시장 몇 명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 세 개 도시는 히우 및 다른 지역과 매우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포퓰리즘의 불행으로, 무책임한 점유가 가장 빈곤한 이들의 지지라도 받는 듯, 그것을 방치하도록 허가한 것입니다. ((후단은 억지로 옮겨 놓은 것으로 오역일 가능성이 특히 높다. 원문: Mas, da década de 80 para cá, essas três cidades tiveram um processo muito semelhante ao que houve no Rio e em outras regiões, que é a desgraça do populismo, a permissividade de deixar ocupações irrespoensáveis, como se fossem aliados dos mais pobres.))

주거 정책

지우마 [대통령]은 브라질의 주거 문제를 공공 투자라는 방식으로 공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지휘로 시작된 연방 계획인 “나의 집, 나의 생활(Minha Casa, Minha Vida)”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 계획의 제2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현재 필요한 것은 산사태로 인한 이재민들에게 관심을 쏟는 일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것은 무척 극적인 순간이고, 여러 장면들이 매우 강렬하며, 사람들의 고통이 눈에 보이고, 위험이 매우 큽니다. 지금은 우리가 연방·주·시 정부의 협력을 통하여 도울 수 있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재건의 순간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또한 성장 가속 계획으로써 배수로와 브라질 도시 비탈 산사태 방지를 위해 110억 헤아우(Real; 1헤아우는 약 670원)를 충당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노바 프리부르구

지우마 [대통령]은 비행을 마치고 노바 프리부르구의 한 축구장에 착륙하여 장관 여섯 명 및 카브라우 [주지사]와 동행, 시 중심부에 위치한 진흙과 오물로 덮인 광장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나서 대통령은 산사태 피해가 가장 큰 도시들 중 한 곳의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히우 시 방위청(Defesa Civil do Rio)에 따르면, 노바 프리부르구·페트로폴리스·테레조폴리스에서 5천여 가구가 집이나 가게를 잃었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가게를 잃은 가구는 모두 보조 대여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세 도시의 인구조사에서 등록된 주민 모두에게 가족쌈짓돈(Bolsa Familia) 한 달치가 미리 지급되게 하겠다고 확언하였다. 대통령은 연방정부는 상파울루, 미나스제라이스, 고이아스, 이스피리투두산투의 비 상황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지우마 [대통령]은 호우 피해가 심한 주들에 충당하는 연방 기금 7억 8천만 헤아우가 가장 신속하고 가능한 한 덜 관료적인 형식으로 풀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였다.

보건

이번 목요일[2011년 1월 13일]에 알레샨드리 파질랴 보건부 장관은 노바 프리부르구·페트로폴리스·테레조폴리스 시에 90만 헤아우의 예산이 미리 지급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파질랴 [장관]은 마리냐와 히우 [주] 정부에서 주의 산간 지역에 짓고 있는 임시 병원의 비용도 보건부가 부담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히우의 연방 병원 여섯 곳에서는 산사태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수술 일부를 연기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어 “위어”의 준말의 음가 #1

이 포스트를 쓴 계기가 된 포스트, “우리말 ‘ㅟ +ㅓ’의 준말에 대하여”에서는 같은 제목의 논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이 블로그는 바바 예투 가사를 찾다가 발견하였다. 자막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ㅟ’를 [wi]로 발음하는 언중에게 있어 ‘ㅟ+ㅓ’는 [wjə]라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이다. 내가 자라온 대전 지역에서는 ‘ㅟ’를 [wi]로 발음하지만 [wjʌ]가 되어야 할 ‘ㅟ+ㅓ’는 명백하게 [jʌ]~[ɥʌ]이다.

[중략]

그럼에도 상기의 논문에 “지금 우리말에서는 ‘ㅟ’가 방언과 세대에 따라 [ü], [wi], [i] 세 가지로 발음되고 있는데, 이 다른 발음에 따라 ‘ㅟ +ㅓ’의 준말도 [ɥə]와 [wjə], 그리고 [jə], [i]로 각각 발음된다.”라는 진술이 있는 것은 국어의 소리에 대한 연구가 현실을 외면하는 사례다.

일단 한국어 “위어”를 1음절로 합쳐서 읽을 때 음성 전사 [wjə]에 해당하는 소리가 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위의 인용문에 조금은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위 포스트에서는 언급한 논문이 어디에서 “옳지 않은” 주장을 했는지를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위 인용문에서 논문의 주장 및 포스트의 반론은 아래와 같이 써 볼 수 있다.

논문: “위”를 [wi]로 발음하면 “위어”의 준말을 [wjə]로 발음한다. (“위”를 [y]로 발음하면 “위어”의 준말을 [ɥə]로 발음한다. “위”를 [i]로 발음하면 “위어”의 준말을 [jə]나 [i]로 발음한다.)

포스트: “위”를 [wi]로 발음하지만 “위어”의 준말을 [jʌ]~[ɥʌ]로 발음하는 반례가 있으므로 논문의 주장은 옳지 않다.

여기서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wjə]가 이상한 만큼 [wi]도 이상하다.

저 논문에 대하여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조건문의 전제가 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어 “위”의 활음은 (일단 발음된다면 지역이나 세대와는 무관하게) 음성적으로 원순 연구개 접근음(원순 후설 활음) [w]이 아니라 (([w]로 양보하더라도, 이차 조음으로 경구개 접근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원순 경구개 접근음(원순 전설 활음) [ɥ]으로 실현된다. ((이호영. 《국어음성학》. 서울: 태학사, 1996.))  “우이”를 빠르고 분명하게 발음할 때 나는 소리 [wi]와 처음부터 “위”를 발음해서 내는 소리 [ɥi]의 음가가 다름은, 각각을 번갈아 발음하면서 주의를 기울여 보면 알 수 있다. [wi]가 음성 전사가 아니었다고, 즉 “위”의 음소 전사인 /wi/의 오기였다고 볼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ɥ/와 /w/를 별개의 음소로 보고 있고 “위”를 /ɥi/나 [ɥi]로 적은 예는 한 번도 없으므로, [wi]를 “위”의 음소 전사뿐만 아니라 (잘못된) 음성 전사로도 사용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저 논문에서 제시한, /ɥ/를 별개의 음소로 보는 분석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단 [ɥ]는 “위”에서만 나타나므로 한국어의 (음성 체계와 별개인) 음운 체계에 포함된 독립된 음소라고 하기에는 분포가 너무 제한적이다. 또 논문에서는 /ɥ/와 /w/의 대립쌍으로 “뉘어”의 준말[nɥə]과 “누어”의 준말[nwə]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서”와 “셔”를 가지고 한국어에 /s/와 /ʃ/의 음소 대립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위 포스트에서 든 예만으로는 저 조건문을 거짓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위”를 ([y]나 [i]가 아니라) [ɥi]로 발음하면서 “위어”의 준말을 [ɥʌ]로 발음하므로, “위”의 음가가 “위어”의 음가에 영향을 준다는 논문의 주장을 (증명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지지한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추론의 일례

지난 몇 년 동안 고민하던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뻘짓이었는지 알아 버렸다.

언어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통용되는 관찰: 귀여운 발화에서는 조음 위치가 앞으로 이동한다. ((사실 완전히 비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치조음을 치음으로 낸다는 기술은 여러 책에 나오는데, 책을 찾으러 돌아다니기 귀찮으니까 서지사항은 나중에 써야겠다. 사실 이런 식으로 출처를 묻어버린 일이 적지 않… 잘못했어욤.))

– 지지하는 사례: 치조음의 치음화, 후설 모음의 전설화

– 반례: 치조음의 경구개음화?

이 바보. 저게 어떻게 반례가 돼. 입천장(경구개)이 윗잇몸(치조)보다 뒤에 있다고 해서 경구개음이 치조음보다 뒤에서 날 것으로 생각해 버리다니. (설첨-)치조음을 낼 때는 혀끝이 윗잇몸에 있지만, (설면-)경구개음에서는 혀끝이 더 앞으로 나와서 아랫니에 닿잖아?

그래도 어떻게든 변명을 해 보자면, 자음에 이름을 붙일 때 조음 위치의 수동부만 명시하는 관례에도 일말의 원인이 있지 않을까… ((자음의 이름은 `무성 유기 연구개 파열음’처럼 `성+기식+조음 위치+조음 방식’이 된다.)) 하지만 2007년 2학기 바스크 어 발표 이후로 관례야 어쨌든 설면-치음, 설첨-치조음처럼 능동부까지 꼬박꼬박 적어 온 것도 나니까 할 말이 없다. 잘못된 추론의 일례로 두고두고 써먹고 싶지만, 언어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겠군.

덧붙임_조음 위치는 능동부와 수동부 사이의 거리가 가장 작아지는 지점을 말하니까, 경구개음이 치조음보다 뒤에서 난다는 말을 꼭 틀렸다고 볼 수 있나 싶기도 하다. 그냥 귀여운 발화에서는 혀가 앞으로 나온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음음성학-키스테크닉 드립 포기

`조음음성학을 공부하면 키스테크니션이 될 수 있어요’는 지난 몇 달 동안 상당히 흥했던 개드립이었지만, 최근 인과 관계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음은 물론 상관 관계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판단이 들어서 전공 개그에서 사기를 치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어제 ㅇㅈ님과 주고받은 SMS를 무단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략)

ti: 그리고 나는 조음음성학키스테크닉을 포기하기로 했…

ㅇㅈ: 엥 왜??

ti: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사실이 아닌 것 같아(…).

ㅇㅈ: 음성학적으로 아무리 정교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키스의 감의 진수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건가…

ti: 도달할 수 없다기보다는 다른 영역인 것 같아 음성학에서 다루는 것은 특정 소리를 목표로 하는 움직임이지만 키스는 가능한 한 많은 자극을 주기 위한 움직임이고 결정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내가 계산할 수 없어

ㅇㅈ: 음 ㅠㅠ 정말이군 ㅠㅠ 역시 경험치를 쌓는 편이..

ti: 결국 키스를 열심히 하면 조음음성학을 잘 할 수 있다는 암울한 결론 ((정확하게 말하면 함의 관계까지는 아니고, `키스테크니션은 조음음성학을 잘할 수 있어요’ 정도의 주장이나 겨우 가능하다는 정도.))

ㅇㅈ: 앗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ㅋㅋㅋㅋ

ti: 예수님도 말씀하셨지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ㅇㅈ: 부익부 빈익빈 ㅜ 언어학을 하기 전에 나가서 키스나 많이 하고 다녀야겠어요>_<

(후략) ((거듭 말씀드리지만 모든 언어학과 학생들이 이딴 대화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나의 언어학 개그는 기술적이고 ((여기서 기술은 記述과 技術 모두를 말한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을 아무개를 위해 영어로 쓰면 descriptive와 technical을 동시에 말한다능. 😉 )) 세부적인 부분밖에 다룰 수 없는 것인가(…). 가지와 이파리만 주워 모으는 인생이니까, 배고픔에 낚여서 빡친 예수 그리스도의 저주로 평생 열매를 못 맺게 될지도. ((마태복음 21장 18~19절.))

어느 언어학과 학생의 츤데레 및 말라가시 어 잡담

1_[어느 언어학과 학생의 ***]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으로 실화를 써 본다. 이것을 받아서 만담으로 이어줄 사람이 이제 없으니까 그냥 일회성 개드립으로만 남겠구나.

따, 딱히 당신이 원해서가 아니야! 그냥 내 언어습득 능력을 가늠해보고 싶으니까,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접해본 적이 없어서 이참에 알아보고 싶으니까 찾아볼 거라고! 그것뿐이야!

이런 이유로 말라가시 어 자료를 틈틈이 찾아보기로 했다. -_-v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위키백과를 제외하면 일반 언어학을 기준으로 하는 서술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이 소리는 프랑스 어의 무슨 소리처럼 내라는 설명 말고 구체적인 조음 위치를 좀 내놓았으면 좋겠다. 내가 말라가시 어 소리를 받아들일 때 프랑스 어 화자의 청각 인상을 거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런 불평도 그냥 사치스러운 이야기이다. `오지’ `선교’를 목적으로 어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해당 언어의 발화를 듣고 음소를 뽑아내는 것부터 훈련한다고 하는데, 기독교도의 성실성에 뒤지는 것을 상당한 치욕으로 생각했던 기간이 짧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문자 체계가—그것도 새로 익힐 것도 없는 라틴 문자로—잘 갖추어져 있고 내가 해독할 수 있는 영어나 프랑스 어로 된 학습서와 연구서를 구할 수 있는 언어는 그냥 차려진 밥상과 다를 것도 없다. (( 무, 물론 그렇다고 익히기 쉽다는 것은 아니다. =_=)) 우걱우걱.

그런데 차려진 밥상이든 무엇이든 말라가시 어에 대한 나 자신의 동기가 강해야 말이지(…).

2_어쨌든 처음에 말라가시 어 이야기가 나온 계기는 알릴 만하다.

http://bit.ly/9sFDaO ..마다가스카르 정국에 한국 기업의 행위가 이런 영향을 끼쳤다니. 정신 박힌 언론이라면 광우병 따위 집어치우고 당장 안타나나리보로 날아가서 기획기사를 써라

이하의 내용은 트윗의 링크로 대체합니다. 어절마다 링크가 다르니까 주의하세욤. 그나저나 이 이야기가 나온 곳이 엔하위키와 2ch라니 그것은 그것대로 무섭다(…).

3_사실 나는 이미 여러 해 전에 말라가시 어의 존재에 큰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 음성학을 처음 배웠을 때 유성 장애음의 조음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아서 앞에 비음을 살짝 집어넣는 버릇이 있었는데,  말라가시 어에서 /t·d/와 /nnd/가 음소로서 대립한다는  글을 [언어학의 수리적 기초] 스터디 때 읽고 나서 불성실한 조음을 반성하고 유성 파열음을 온전한 구강음으로 실현하는 데 힘쓰게 되었…지만 여기에 감동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