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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효과: (1) 진리치를 넘어서

노신(魯迅, 한어병음: Lu Xun, 한글 외래어 표기: 루쉰)(1881–1936)의 산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논점 세우기(立論)

노신, 1925년 작. 『들풀(野草)』에 수록.
원문: http://zh.wikisource.org/wiki/%E7%AB%8B%E8%AB%96

꿈에서 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글을 짓기 위해 교사에게 논점을 세우는 방법을 묻고 있었다.

“어렵지!”

교사는 안경 너머로 비스듬히 눈빛을 보내더니 나를 보고는 말했다.

“너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 어느 집에서 아들을 낳고는 온 집안이 뛸 듯이 기뻐했지. 한 달을 채우자 아기를 안고 나가서 손님들에게 보여 주었단다—  당연히 덕담을 들었으면 해서겠지.
어떤 사람은 ‘이 아기는 앞으로 돈을 많이 벌 겁니다.’ 라고 했어. 그래서 최고의 감사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이 아기는 앞으로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라고 했어. 그리고는 온 집안사람들에게 호되게 맞았지.
반드시 죽는다는 말은 필연적이지만, 부귀를 누린다는 말은 허황되잖아. 그런데 허황된 말을 하면 좋은 보답을 받고, 필연적인 말을 하면 매를 맞아. 너는…”

“저는 허황된 소리도 안 하고 싶고, 매도 안 맞고 싶어요.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죠?”

“그러면, 이렇게 말해 보렴. `우와! 이 아기 좀 봐요! 어쩜… 아유! 하하! Hehe! he, hehehehe!'”

1925년 7월 8일

<마지레스>허황된 소리도 하지 않고 매도 맞지 않으려면 “나는 이 아이가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부자가 되리라는 장담에 비하자면 “최상의 감사 인사”야 받지 못하겠지만, 소박한 답례 정도는 들을 수 있을 터이다.</마지레스>

노 선생은 이 이야기에서 진실을 말하는 데에 고난이 따르는 현실을 풍자하고 싶었던 듯하나, 이 이야기의 진정한 교훈은 진리치가 참인 명제라고 해서 다 유의미한 말이 되지는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하필이면 이 이야기가 덕담을 (( 오덕이나 덕후의 덕 말고. )) 요구하는 상황인 만큼, 이것이 청자에게 불쾌감을 주면 안 된다는 예의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사실, 많다. 심지어는 “청자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사실은 말하기를 보류하는 편이 좋겠지요.” 같은 “매너”로만 해석하기도 한다. )) 하지만 아래의 만화를 보면…

"내일 눈이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라는 진술은 어떤가? 이 진술은 '공허한 형식'이지만 완벽한 진리야! 맞아요. 하지만 내일의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진리죠!
『로지코믹스』(독시아디스, 파파디미트리우 글, 파파다토스, 디 도나 그림 / 전대호 역 / 랜덤하우스 코리아) 264면.

[그림 속 텍스트 시작]
러셀: “내일 눈이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라는 진술은 어떤가? 이 진술은 ‘공허한 형식’이지만 완벽한 진리야!
비트겐슈타인: “맞아요. 하지만 내일의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진리죠!”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20년간 항진명제를 생산하는 기계의 존재를 정당화하려고 비지땀을 흘린 것이었다.
[그림 속 텍스트 끝]

물론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사람은 다 죽는다.”라는 명제가 위 만화에서 말하는 항진명제에 해당하지는 않으므로, 위에서 인용한 부분을 여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 “내일 눈이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 대신 “내일의 일일강수량은 0 mm 이상 1000 mm 미만이다.”라는 명제는 어떨까? 이 명제가 참이 되는 것은 논리적 형식이 아니라 현재의 실제 세계의 조건에 근거하였으므로 러셀의 관심사는 아닐 터이지만, 이 “진리”도 내일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 어쨌든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사람이라면 모두 겪게 되는 일이고, 이 아기의 장래에 관해서는 새롭고 유의미한 사실이 아니다. 이 말이 담화에 기여할 수 있는 상황을 여러 가지로 구성해 볼 수야 있다.

(1) 부모가 망상에 빠져서 아기가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경우:
일반적인 진리를 부모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명백하므로, 부모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 (( 부모가 아기에게까지 그러한 망상을 주입하려고 들거나 아기를 어떻게 다루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학대라도 하지 않는 한 꼭 알려줄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후다닥). ))

(2) 의사가 병에 걸린 아이의 소생 가능성을 진단하는 경우:
이 때 아기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어떠한 이유로든 죽게 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진리가 아니라, 죽는 시기와 원인을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을 가리킨다.

더 가능한 상황이야 무한히 많이 있을 수 있겠으나, (1)에서처럼 일반적인 진리 자체가 명시적으로 부정된 것을 바로잡아야만 하거나 (2)에서처럼 같은 문장이라도 일반적인 진리 이상의 구체적인 의미를 더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의 상황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 어머니는 내가 아기일 때 어느 어르신에게 “닥터감”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내가 의사가 되려고 하면 될 수 있다고 20년도 넘게 믿은 듯하니까 (1)을 만족할지도 모르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아이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입니다.”를 “이 아이는 앞으로 의사가 될 것입니다.”만큼 진지하게 들을 리는 없…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으로 받아들이고 은혜로워할 것 같… 아마 안 될 거야. orz ))

鲁迅, 死火

꿈 속에서 보니 내가 얼음산 속을 마구 달리고 있었다.

크고 높은 얼음산, 그 꼭대기는 얼음하늘에 닿아 있었다. 하늘 위에는 얼어 붙은 구름이 자욱했고, 구름 조각 하나 하나가 마치 물고기 비늘 같았다. 산기슭에는 얼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가지며 이파리가 모두 소나무나 삼나무처럼 뾰족했다. 이 모든 것이 얼음처럼 차갑고 희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얼음골짜기 속으로 떨어졌다.

아래 위 사방으로 모든 것이 얼어 붙어서 희푸른 빛이었다. 그런데, 온통 희푸른 얼음 위에, 붉은 그림자가 산호 그물처럼 무수히 얽혀 있었다. 몸을 구부려서 발 아래를 보니 불꽃이 하나 있었다.

죽은 불이었다. 이글거리는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전체가 얼어붙어서 산호 가지처럼 생겼다. 뾰족한 끝에 아직 응고된 연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불의 저택에서 막 빠져 나와서 말라 붙어 버렸으리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 죽은 불이 얼음으로 된 네 벽면에 비쳐서 서로 반사되어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어 이 얼음 골짜기를 붉은 산호빛으로 물들였다.

하하!

내가 코흘리개 시절 질주하는 군함에서 솟구치는 물보라나 커다란 용광로에서 분출되는 불꽃을 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냥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똑똑히 보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어서 고정된 형태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아무리 응시해 보아도 어떠한 일정한 흔적을 남기는 일이 없었다.

죽은 불꽃이여, 이제 내가 먼저 그대를 손에 넣었다네.

내가 죽은 불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주워 올리자 그 냉기가 내 손가락을 태웠다. 그러나 나는 꾹 참고 호주머니에 그를 넣었다. 갑자기 얼음골짜기 사면이 완전히 희푸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얼음골짜기를 빠져 나갈 방법을 계속 모색하였다.

내 몸에서 검은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올라서 철사로 만든 뱀처럼 솟아올랐다. 곧바로 큰 불이라도 모인 듯 얼음골짜기 사면이 붉은 불꽃의 요동으로 가득 차서 나를 둘러쌌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았다. 죽었던 불이 타올라서 내 옷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얼음땅 위를 흐르고 있었다.

“앗, 친구여! 그대 온기로 나를 깨워 주었군요.”

나는 얼른 그에게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었다.

“나는 옛날에 어떤 사람들에게 얼음골짜기로 버림을 받았지요.” 그는 묻지도 않은 말로 대답하였다. “나를 버린 놈들은 벌써 죽어서 소멸해 버렸어요. 나도 꽁꽁 얼어서 죽을 뻔했고요. 그대가 나에게 따뜻한 열기를 주어서 다시 타오르게 해 주지 않았다면, 나도 오래 못 가서 죽었을 거예요.”

“그대가 깨어나니 나도 기쁘군요. 나는 얼음골짜기를 빠져 나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대를 데리고 나가서 다시는 얼어붙지 않고 영원히 타오르게 해 주고 싶어요.”

“아앗! 그러면 나는 전소해 버리잖아요!”

“그대가 전소하면 나도 슬프지요. 그러면 그대를 여기 두고 가야겠군요.”

“아앗! 그러면 나는 얼어 죽어 버리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러는 그대는 어쩌려고요?” 그가 반문했다.

“나는 벌써 이야기했잖아요. 이 얼음골짜기를 빠져 나가겠다고……”

“그러면 나는 전소해 버리겠어요!”

그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붉은 혜성처럼 뛰어 올라서 나와 함께 얼음골짜기 출구로 나갔다. 갑자기 커다란 돌수레가 달려와서 나는 바퀴에 깔려 죽었지만, 그래도 그 수레가 얼음골짜기로 떨어지는 것은 볼 수 있었다.

“하하! 너희는 더 이상 죽은 불을 만날 수 없어!”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듯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1925년 4월 23일

노신 [[들풀]] [죽은 불] http://www.tianyabook.com/luxun/poem/00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