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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tero의 한글 표기: ‘조테로’는 틀리지 않았다

이 포스트에서 나는 파이어폭스 애드온에서 시작한 참고문헌 관리 소프트웨어의 이름인 Zotero의 한글 표기에 ‘테어’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당연히 ‘조테로’라고만 말하고 써 왔고 다른 가능성은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것은, Zotero는 ‘조테로’가 아니라 ‘조테어’라고 언급한 블로그 포스트를 우연히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조테어’라는 표기는 Zotero 홈페이지 첫머리의 소개글에 명시된 [zoh-TAIR-oh]라는 발음 설명에서 비롯한 듯하다. ((정말 이것을 충실하게 따랐다면 ‘oh’에 해당하는 표기도 있어야 할 터이다. 그러나 2012년 5월 23일 현재 구글 검색에서 ‘조테어’의 결과는 500 건 이상인 반면 ‘조테어로’나 ‘조테어오’의 결과는 0 건이다. 하지만 어쨌든 ‘테어’의 연원을 TAIR 이외에서 달리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후의 논의에서는 ‘테어’가 홈페이지에서 언급된 TAIR에서 나왔다는 가정을 유지하겠다.))

일단 Zotero의 발음을 국제음성문자로 표시한 문건을 찾아보았다. 위키백과 영문판 항목에는 /zoʊˈtɛroʊ/라고 되어 있다.  The Ideophone이라는 블로그의 “The etymology of Zotero”라는 포스트에서는, 영어 사용자라면 대부분 [ˌzɔˈtɛɹoʊ]라고 발음하고 있으리라고 서술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외래어 표기법」 제2장의 표기 일람표를 따르자면 ‘조테로’라고 표기하게 된다.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이 ‘원음’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불신하는 이라면 ‘조우테로우’라고 적을 수도 있을 터이다.)) ‘테’ 뒤에 ‘어’를 넣을 이유가 없다.

물론 이러한 ‘외부인’의 시각보다 ((위키백과 영문판 항목에서 국제음성문자를 처음 사용한 버전이나 현재의 표기로 바꾼 버전을 작성한 이들이 Zotero 개발에 관여한 것 같지는 않다.)) 개발자 본인의 설명을 더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Zotero는 이러한 입장에서도, 아니, 이러한 입장에서야말로 더욱 ‘조테로’가 된다. 위키백과에 나온 국제음성문자 표기야말로 홈페이지의 발음 설명을 충실히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zoh-TAIR-oh]는 발음기호가 아니라, 영어 사용자가 발음을 유추할 만한 영어 단어의 철자로 표기된 것이다. 이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가 철자 AIR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가 유추하는 것과 같다는 보장이 없다.

여기에 비유할 만한 상황으로 한국어의 예를 들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한국어 사전에서 ‘신랄하다’를 찾으면 [실—]이라고 나온다. 즉, ‘신랄’이라고 쓰고 [실랄]이라고 읽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어 사용자라면 [실랄]을 보고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특히, ㅅ와 ㄹ을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동으로, [사랑]의 ㅅ와 ㄹ과는 다르게 발음한다. 그런데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접하여 ㅅ는 s로, ㄹ는 r로 대응된다는 지식이 있는 영어 사용자가 [실랄]이라는 발음 설명을 보았다고 해 보자. 이 학습자가 한국어에서 ㅅ와 ㄹ의 발음이 출현 환경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모르는 채 각 부분을 기계적으로 대응시키기만 한다면 이 단어를 ‘sirrar’이라고 표기하고, 심지어는 이러한 표기를 다시 영어 철자에 유추해서 ‘신랄’의 [실]을 영어의 ‘sir’처럼 발음할지도 모른다. 즉, 국제음성문자가 아니라 해당 언어의 철자로 발음을 유추하도록 한 설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해당 언어의 자음과 모음이 출현 환경에 따라서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Zotero를 [zoh-TAIR-oh]라고 쓴 의도를 살펴보자. TAIR라는 설명이 없을 때 영어 사용자들은 철자 ‘er’나 ‘ero’를 보고 ‘ter’를 ‘butter’에 나온 것처럼 발음하거나, ‘ero’를 ‘hero’에 나온 것처럼 발음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TAIR의 주된 의도는 철자 e를 ‘butter’나 ‘hero’ 에서와는 달리 ‘air’의 모음과 같이 /e~ɛ/로 발음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어 사용자와는 달리 철자 e에서 ‘에’를 가장 먼저 생각할 가능성이 클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이것이 신기한 일이 아니다. 대신 한국어 사용자들은 뜻밖에도 /e/ 뒤에 /ə/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air’를 ‘에어’로 표기하는 데서 이러한 유추가 쉽게 일어날 것이다.

‘air’의 발음은 영국 영어(용인 발음; Received Pronunciation)에서는 /ɛə/, 미합중국 영어(General American)에서는 /er/이다. ((

Giegerich, Heinz J. English Phonology: An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63면.

)) ((사전에서는 다르게 표기하기도 한다. 팜톱에 설치된 영어사전 네 종류에서 ‘air’를 각각 찾아본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사전 영국 미국
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eə(r) er
Collins Cobuild Advanced Dictionary of English 구분 없이 eər
Cambridge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r er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구분 없이 ɛː

)) ‘어’라고 쓸 만한 모음은 영국 영어에만 있는 셈이다. 미국 영어라면 ‘어’를 쓸 필요가 없다. Zotero가 합중국에서 개발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외래어 표기법」 제3장 제1절 영어 표기에 나온 사례에 표기된 발음이 다 영국 영어식이니까 ((외래어 표기법에서 영어의 표기는 용인 발음을 따르겠다고 명시한 구절을 찾지는 못하였다.)) 영국 영어를 따라서 ‘어’를 넣겠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영어 음소 /ɛə/가 나타나는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air’, ‘hair’, ‘bear’ 등에서는 /ɛə/가 단어 끝에 나타나지만, Zotero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모음 앞에서 나타나는 경우 /r/이 발음되고 ((위의 책, 66면. “Nonrhotic accents do have postvocalic /r/ if it is at the same time part of a syllable onset rather than a rhyme; in other words, if it is intervocalic.”)) /ə/가 사라진다. ((같은 곳. “The vowel phonemes that occur in this context are essentially those of the basic system rather than the ones of the secondary system given in table 3.5. Thus we can get /ir/ (lyrics), /ɛr/ (herring), /ʌr/ (hurry), /ar/ (marry) etc. (강조는 인용자)”)) 즉, 영국 영어식 발음을 따르더라도 ‘어’를 넣을 이유가 없다. ‘Mary’를 ‘메어리’가 아니라 ‘메리’라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어 사용자의 발음에서 ‘어’스러운 소리가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혀가 e에서 r로 이동하는 사이에 ə의 위치를 지나다 보니까 있을 수 있는 경우이지, 영어 사용자가 e와 r 사이에 ə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것을 발음해야겠다고 작정해서 나온 소리는 아니다.))

한국어 “위어”의 준말의 음가 #1

이 포스트를 쓴 계기가 된 포스트, “우리말 ‘ㅟ +ㅓ’의 준말에 대하여”에서는 같은 제목의 논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이 블로그는 바바 예투 가사를 찾다가 발견하였다. 자막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ㅟ’를 [wi]로 발음하는 언중에게 있어 ‘ㅟ+ㅓ’는 [wjə]라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이다. 내가 자라온 대전 지역에서는 ‘ㅟ’를 [wi]로 발음하지만 [wjʌ]가 되어야 할 ‘ㅟ+ㅓ’는 명백하게 [jʌ]~[ɥʌ]이다.

[중략]

그럼에도 상기의 논문에 “지금 우리말에서는 ‘ㅟ’가 방언과 세대에 따라 [ü], [wi], [i] 세 가지로 발음되고 있는데, 이 다른 발음에 따라 ‘ㅟ +ㅓ’의 준말도 [ɥə]와 [wjə], 그리고 [jə], [i]로 각각 발음된다.”라는 진술이 있는 것은 국어의 소리에 대한 연구가 현실을 외면하는 사례다.

일단 한국어 “위어”를 1음절로 합쳐서 읽을 때 음성 전사 [wjə]에 해당하는 소리가 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위의 인용문에 조금은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위 포스트에서는 언급한 논문이 어디에서 “옳지 않은” 주장을 했는지를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위 인용문에서 논문의 주장 및 포스트의 반론은 아래와 같이 써 볼 수 있다.

논문: “위”를 [wi]로 발음하면 “위어”의 준말을 [wjə]로 발음한다. (“위”를 [y]로 발음하면 “위어”의 준말을 [ɥə]로 발음한다. “위”를 [i]로 발음하면 “위어”의 준말을 [jə]나 [i]로 발음한다.)

포스트: “위”를 [wi]로 발음하지만 “위어”의 준말을 [jʌ]~[ɥʌ]로 발음하는 반례가 있으므로 논문의 주장은 옳지 않다.

여기서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wjə]가 이상한 만큼 [wi]도 이상하다.

저 논문에 대하여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조건문의 전제가 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어 “위”의 활음은 (일단 발음된다면 지역이나 세대와는 무관하게) 음성적으로 원순 연구개 접근음(원순 후설 활음) [w]이 아니라 (([w]로 양보하더라도, 이차 조음으로 경구개 접근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원순 경구개 접근음(원순 전설 활음) [ɥ]으로 실현된다. ((이호영. 《국어음성학》. 서울: 태학사, 1996.))  “우이”를 빠르고 분명하게 발음할 때 나는 소리 [wi]와 처음부터 “위”를 발음해서 내는 소리 [ɥi]의 음가가 다름은, 각각을 번갈아 발음하면서 주의를 기울여 보면 알 수 있다. [wi]가 음성 전사가 아니었다고, 즉 “위”의 음소 전사인 /wi/의 오기였다고 볼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ɥ/와 /w/를 별개의 음소로 보고 있고 “위”를 /ɥi/나 [ɥi]로 적은 예는 한 번도 없으므로, [wi]를 “위”의 음소 전사뿐만 아니라 (잘못된) 음성 전사로도 사용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저 논문에서 제시한, /ɥ/를 별개의 음소로 보는 분석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단 [ɥ]는 “위”에서만 나타나므로 한국어의 (음성 체계와 별개인) 음운 체계에 포함된 독립된 음소라고 하기에는 분포가 너무 제한적이다. 또 논문에서는 /ɥ/와 /w/의 대립쌍으로 “뉘어”의 준말[nɥə]과 “누어”의 준말[nwə]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서”와 “셔”를 가지고 한국어에 /s/와 /ʃ/의 음소 대립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위 포스트에서 든 예만으로는 저 조건문을 거짓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위”를 ([y]나 [i]가 아니라) [ɥi]로 발음하면서 “위어”의 준말을 [ɥʌ]로 발음하므로, “위”의 음가가 “위어”의 음가에 영향을 준다는 논문의 주장을 (증명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지지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