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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한시외전]] 제2권 23장: 닭의 다섯 가지 미덕

한번은 큰맘 먹고 교수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각자 먹을 것을 고르는데, 한 친구가 연어구이와 고등어조림 사이에서 고민했다.

“연어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강물을 힘들게 거슬러 올라가니까 고등어를 먹어야지.”

“고등어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미덕이 있을 거야. :-P”

이렇게 말했더니, 미덕이라는 표현 때문에 다들 웃었다.

나중에 [[한시외전]]에서 그때 일이 떠오르는 대목을 발견했다. 이 친구에게 닭도 먹지 말라고 알려 주어야 하나?

이윤은 하를 떠나 은으로 갔다. 전요는 노를 떠나 연으로 갔다. 개자추는 진을 떠나 산속으로 갔다. 전요는 노 애공 밑에서 일했지만 주목받지 못해서, 애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임금님에게서 물러나겠습니다. 고니가 중용되겠군요. ((黃鵠舉矣에서 黃鵠이 주어이면 舉를 어떻게 해석하지?)) ”

애공이 말했다.

“무슨 말인가?”

“군주께서는 저 닭을 못 보셨습니까? 머리에 관을 쓴 것은 문입니다. 발에 며느리발톱을 단 것은 무입니다. 적이 앞에 있을 때 싸움을 무릅쓰는 것은 용이고, 밥을 보고 상대를 부르는 것은 인이며, 밤을 지키면서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은 신입니다. 닭이 이러한 덕목 다섯 가지를 갖추었는데도 군주께서 이놈을 매일 데쳐서 잡수시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바로 닭이 온 곳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저 고니는 단번에 천 리를 날아와서 임금님의 정원이며 연못에 죽치고는 임금님께서 키우시는 물고기나 자라를 잡아먹고 기장이나 대들보를 쪼기나 하지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덕은 없는데, 군주께서 이를 소중히 여기시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고니가 온 곳이 멀기 때문입니다.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고니가 중용되겠지요.”

애공이 말했다.

“잠깐, 내가 그대의 말을 적어 놓겠다.”

전요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밥을 먹으면 그릇을 깨지 않고, 나무 그늘의 덕을 보면 가지를 꺾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를 쓰지도 않으시는데 말을 적으셔서 무엇합니까?”

그리고는 떠나서 연으로 갔다. 연에서는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삼 년이 지나자 연의 정치는 매우 안정되고 국내에 도둑과 강도가 사라졌다. 애공은 휴우 하며 매우 탄식하고, 이 때문에 침소를 피한 것이 석 달이었고, 의복을 줄였다.

“처음에 신중하지 못하고 나중에도 뉘우치지 않으면 다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伊尹去夏入殷。田饒去魯適燕。介子推去晉入山。田饒事魯哀公而不見察,謂哀公曰:“臣將去君,黃鵠舉矣。”哀公曰:“何謂也?”由饒曰:“君獨不見夫雞 乎?[首戴冠者,文也。足搏距者,武也。] ((이 부분은 위키 소스 본문에서 빠져 있다. 예문서원에서 나온 번역본(임동석 역, 2000년 출간)의 원문에서 보충해서 넣었다.)) 敵在前敢鬬者勇也,見食相呼者仁也,守夜不失時者信也。雞雖有此五德,君猶日瀹而食之者何也?則以其所從來者近也。夫黃鵠一舉千里,止君園池,食君魚鱉, 啄君黍粱,無此五德者,君猶貴之者何也?以其所從來者遠也。故臣將去君,黃鵠舉矣。”哀公曰:“止!吾將書子之言也。”田饒曰:“臣聞食其食者,不毀其 器。陰其樹者,不折其枝。有臣不用,何書其言為?”遂去之燕。燕立以為相。三年,燕政大平,國無盜賊。哀公喟然太息,為之辟寢三月,減損上服。曰: “不慎其前無悔其後,何可復得?”

http://zh.wikisource.org/wiki/%E9%9F%93%E8%A9%A9%E5%A4%96%E5%82%B3/%E5%8D%B7%E7%AC%AC2

이 포스트는 채식 옹호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런 말은 덧붙이기도 낯뜨겁다.

개신교인이기를 그만둔 이유가 아닌 것들

대략 만 열아홉 살 때까지 매사에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던 정통 개신교인 꼬꼬마가 어느 날부터 교회를 가지 않고, 몇 년 뒤에는 자기가 지키는 것의 두세 번째로 무신론을 꼽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사실을 평소에 블로그 밖에서까지 일부러 알리고 다닐 일은 잘 없지만, 길거리나 학내에서 개신교 포교자를 만나면 아주 가끔 낚시 의욕이 발동해서 업계 용어로 떡밥을 던져 볼 때가 있다.

“마음에 `갈급함’이 없어서요.”

상대편에서도 (카톨릭식 표현을 빌린 것이 송구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냉담자가 교회 문턱 한 번 안 밟아 본 사람보다 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니까 크고 아름다운 떡밥을 놓치지 않고 덥석 문다.

“교회 다니셨어요?”

“예.”

“지금은 안 나가세요?”

“예.”

“왜요?”

그래 봤자 묻는 게 묻는 게 아니다. `잃어 버린 양’을 주님의 품으로 도로 데려와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형제·자매들은 벌써 답을 정해 놓고 있기 일쑤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하나님을 보면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문제를 무척 잘 파악하고 있다.

  1. 교회에서 개인적인 `상처’를 받아서.
    — 그런 거 없다. 오히려 당시에는 교회 사람들과의 관계가 순조로운지에 따라 교회 행사 참여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을 보고는 속으로 한심하다고 여기던 편이라서,  교회에서 나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된다.
  2. 돈과 권력을 찬양하는 대형 교회의 주요 인사들 때문에.
    — `진보적인’, 심지어는 급진적인 교회도 있다. 후자는 서울 밖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지만.
  3. 학교에서 정치적인 세력에 미혹되어서.
    — 내가 학교 내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의 집단을 꺼린 이유가 교회와 똑같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특히 워십과 문선의 싱크로율은 쩐다.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학생회 선배들이 어디 가자고 하면 마지못해서나마 따라가던 시기가 교회에 다니던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4. `세상의 초등 학문’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장 8절.
    http://www.youversion.com/bible/korvb/col/2/8)) 때문에. 특히 인문대학에 다닌다고 하거나 적당한 중국 고전을 손에 들고 있으면 틀림없이 이쪽 루트다. ((물론 도킨스 책을 가지고 있으면 더 확실하겠지만, 나는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에서 나의 정답을 공개해야겠는데, 위에서 나온 비장한 예측이 무색해질 정도로 단순하고 사소해서 도무지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잘 없다. 1~4에서는 악역을 지목해서 같이 욕해주고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요♡’로 마무리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메롱. 😛 ((하지만 인간 악역이 없어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요♡’는 할 수 있다. OTL))

신앙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믿겠다는 의지가 나에게 있어서 믿는 것이라는 생각이 어쩌다가 들어버렸고 그것을 부정할 근거가 없었다. 끝.

신앙을 지속할 이유가 원래 있었다가 나중에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 그러니까 당연한 것일 때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조차 없었다.

[덧붙임 #1] 나는 기독교인이기를 그만두고 나서도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도 결국 기독교나 교회에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 (어쩌다 바람직한 목사 한 사람을 보고) “저렇게 훌륭한 목사들만 있다면 나는 당장 교회에 다닐 텐데.”
  • “세상이 이렇게 지저분한 것을 보면 신은 없는 것이 분명해!”
  •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 더러워.”
  • “예수야말로 사회주의를 실천한 혁명가야.”

또 개신교가 싫다는 이유로 다른 종교, 심지어 `이단’에 호감이나 동정심을 가지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나로서는 그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다른 종교를 개신교를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는가?

[덧붙임 #2] 하지만 내가 다른 종교인보다 개신교인에게 더 거리를 두는 것은 사실이고, 그 이유는 본문의 1~2와 무관하다. 물론 착하고 리버럴한 개신교인이야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겠지만.

양웅, [[법언]]

양웅은 서한 말의 `언어학자’라는 설명 때문에 이름만 기억해 둔 정도였다. 여러 해 동안 그 상태에 있다가 2009년 2학기 늦가을이 되어서야 [[법언]]을 읽어 보았다. 시험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흥미가 300% 증가할 때인데도 정말 재미가 없었다. 다음에는 언어학자로서 썼다는 [[방언]]을 보아야겠다.

한문 원문은 자유문고에서 나온 번역서(최형주 역, 1996년 출간)에서 가져 왔고, 한국어로는 내가 따로 옮겼다.

[10. 중려(重黎)] 중에서
或問: “趙世多神, 何也?”
누군가가 물었다.
“조 시대에 신비한 일이 많았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번역서에는 진(秦) 왕실이 조(趙)씨였다는 점에서 `진대에’ 신비한 일이 많았다고 되어 있지만, 나는 [[사기]]의 [조세가]가 먼저 떠올랐다. 진, 조 중 어느 쪽이든 [[사기]]의 [본기]와 [세가]에서 웬만한 괴담은 [진(秦)본기], [진시황본기], [고조본기], [금상(=무제)본기], [조세가]에 집중되어 있어 있었던 것 같다. 진 시황이나 한 고조는 창업 군주에게 갖다 붙이는 전설만 해도 상당할 터이고, 또 진 시황과 한 무제가 워낙 신선에 집착했으니까 창작 괴담이나 방사에게 사기당한 이야기가 충분히 있을 만하다. 결국 [조세가]만 붕 뜨는 기분이다. 다른 제후국의 [세가]에는 괴담이 거의 없다. 진 시황의 어머니가 조 출신이라서 분서갱유 때 조의 역사책만 남겨 놓았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지만, 아무래도 그럴듯한 설명은 아니다.

어쨌든 여기서, 나도 궁금했어요. 왜 조에만 신비한 이야기가 많을까효? 드디어 답을 얻을 수 있는 거야? 두근두근…… 잠깐, 여기서 `子罕言怪力亂神, 선생님께서는 괴담이나 폭력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논어]] [자한])) 라고 하면 반칙이야. 실망할 거야. 삐칠 테야.

(계속)
曰: “神怪茫茫, 若存若亡, 聖人曼云.”
대답했다.
“귀신 이야기나 괴담은 아득해서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성인께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OTL

양웅이 한 무제의 증손자인 선제 때 살았으니까, 무슨 문제를 들고 와도 공자님 말씀으로 아닥시키는 것이 무려 서한 후반부터 가능했다는 말이군효ㄷㄷㄷ

그래도 저자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조금 재미있었다.

[12. 군자] 중에서
乍出乍入, 淮南也; 文麗用寡, 長卿也; 多愛不忍, 子長也. 仲尼多愛, 愛義也; 子長多愛, 愛奇也.
[대략 유학자가 긍정적으로 볼 만한 어떤 것에] 잠깐 나갔다가 잠깐 들어왔다 하는 이는 회남왕(유안)이다. 문장이 화려하고 쓰임새가 적은 이는 사마상여 선생이다. 애착이 많아서 참지 못했던 이는 사마천 선생이다. 공구 선생이 애착이 많았던 것은 의로운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지만, 사마천 선생이 애착이 많았던 것은 신기한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것에 대해서 못 참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니 남 이야기 같지 않다. 😀

그나저나 수십 년이 지나고 왕충은 [[논형]]에서 공자님 말씀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는데…… 중앙도서관에서 [[논형]]을 빌렸을 때는 도피하기 곤란할 만큼 시험이 닥쳐서 다 읽지는 못했으니까 다음 기회에 보겠어요.

인터내셔널가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테마 (미완성)

http://frozenfiremeidi.net/mus/20091208_internationale.mp3

[인터내셔널가]
작곡: 피에르 드 제테 (Pierre de Geyter) (1888)
작사: 외젠 포티에 (Eugène Pottier) (1871)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테마]
작곡: 곤도 고지 (近藤 浩治) (1985)

몇 년 전부터 생각하던 것을 기말고사 철을 맞아서 대락 만들어 보다가, 기말고사가 끝나버려서 놓아버렸다. 완성할 기약이 없어서 그냥 이대로 블로그에 올린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버전을 끝내지는 못할 것 같은 것이 기말고사 탓만은 아니다. 인터내셔널가를 가지고 온갖 장난을 치고는 있지만, 상업 게임의 주제곡과 섞는 것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진보 달력 ICS 파일 (구글/아웃룩/iCAL 등에서 사용 가능)

해마다 다이어리에 넣을 A5 용지 크기의 달력을 자체 제작하는 훈훈한 습관이 있었다. 음력 날짜, 24절기, 기념일 등을 찾아서 채워 넣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손 시림과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부터는 구글 달력에서 인쇄하기로 했다. [설정]에서 보조 달력으로 중국 달력을 선택해서 음력 날짜와 24절기를 넣고, 대한민국 휴일 달력도 추가했다. 그래도 허전했다. 3월 8일이나 4월 20일 칸이 비어 있는 것을 아쉬워하다가, 앙겔부처님이 진보넷 달력에 사용한 기념일 목록을 통째로 넣자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매년, 또 아무 곳에서나 쓸 수 있도록 iCAL에서 ICS 파일로 만들었다.

파일 받기: http://frozenfiremeidi.net/sch/jinbo-calendar.ics 지적/수정/재배포를 매우 환영합니다 데헷♡
기념일 목록: http://blog.jinbo.net/taiji0920/?pid=1884

무신론자에게는 어색한 말

신앙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부터 자연스럽게 안 쓰게 된 말이 몇 가지 있다.

  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픔 없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물론 이런 인사를 한다고 해서, 꼭 인간보다 위에 있으면서 인간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존재라든가 인간이 죽고 나서 갈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이 있으리라고 진지하게 믿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있다는 가정에 조금도 기대지 않아 보고 싶다. 특히 다른 이에게 희망을 준다거나 하는 `좋은 의도’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

  위의 인사말 대신 내가 쓰는 말은 좀 약해 보이지만, 내가 정확하게 동의하는 부분을 넘어선 것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

  1. `새해 복 쟁취하세요.’도 써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상대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 돌아가신 분과 더는 함께 있을 수 없어서 슬픕니다.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돌아가다’라는 표현도 산 사람이 사는 곳 이외의 세상의 존재를 함의(전제인가?)한다. 끙끙끙.)

덧붙임 #1. 몇 년 전에 다니던 학교의 학생회관 주변 곳곳에 이런 자보를 붙여 보았는데, 사람들은 1번까지 보고는 더 읽지 않고 고개를 흔들면서 지나가 버렸다. OTL

謹賀新年

학생회관에 서식하거나 출퇴근하거나 가끔 드나드는 모든 분께:
새해에는
1. 하시는 투쟁마다 승리하시고
2. 거시는 작업마다 성공하시고
3. 보시는 시험마다 합격하시고
4. 체력 관리와 체중 조절에 성공하시고
5. 질리거나 포기하는 일 없이 공부하시고
6. 단위마다 새로운 성원들을 많이 맞이하시고
7. 2층 카페테리아 반대편 끝에 있는 생활도서관을 많이 찾아 주시고
8. 연체된 책이나 비디오는 조속히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生活圖書館 運營委員 一同 拜上

덧붙임 #2. 옛날에 보았던 만화 중에서 이 포스트에 넣고 싶은 것이 있어서 오랫동안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겨우 찾았는데, 이 만화를 인용한 게시물을 보니 “도킨스 안 읽고 너드가 아니라도 무신론자가 될 수 있는데!” 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ㅠㅠ

[WHAT ATHEISTS CRY OUT DURING SEX]
“OH, SCIENTIFIC METHOD!”
“MATH!”

© 2005 by Mark Stivers

Stivers-11-7-05-wrong-deity

http://www.democraticunderground.com/discuss/duboard.php?az=view_all&address=105×9010711

http://friendlyatheist.com/2007/10/17/friendly-atheist-contest-5-what-should-atheists-scream-out-in-bed/

같은 소재의 (그리고 위치는 반대인) 만화: Deist On Top by Jeff Swenson

엘리스 헤지나와 메르세데스 소사가 각각 부른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미우톤 나시멘투 (Milton Nascimento) / 페르난두 브란치 (Fernando Brant)
브라질 포르투갈 어 http://letras.terra.com.br/elis-regina/75151/
카스티야 (에스파냐) 어 http://letras.terra.com.br/mercedes-sosa/63315/

가사 해석은 내가 했으니까 너무 믿으면 곤란하다. 😛

마리아, 마리아, 재능이에요, 확실한 마법이에요
우리를 깨우는 힘이에요
그 행성의 다른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사랑할 자격이 있는 여자예요

마리아, 마리아, 소리, 빛깔, 땀이에요
강하고도 효과가 느린 약이에요
울어야만 할 때, 사는 게 아니라 겨우 견디는 것일 때
그럴 때도 웃었던 사람들의 약이에요

하지만 힘이 있어야 해요, 뭉쳐야 해요
한결같은 열망이 있어야 해요
몸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마리아, 마리아, 고통과 기쁨을 섞지요

하지만 약삭빨라야 해요, 은총을 가져야 해요
한결같은 꿈을 가져야 해요
피부에 이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삶에서 믿음을 가지게 되는 신기한 격정이 있어요

엘리스 헤지나의 공연을 보면 구름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드는데, 메르세데스 소사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때는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실감 난다. 엘리스 여왕님께는 넙죽 절을 드리고, 소사 할머니에게는 달려가서 목을 껴안고 싶다.

1. 엘리스 헤지나 (1945~1982)

1980년
Saudade do Brasil 공연

2. 메르세데스 소사 (1935~2009)

여기를 보면 1991년인 듯?
La Movida 출연
[Maria Maria]는 4:08부터지만 무조건 처음부터 봅니다.

  1. Elis Regina – Maria, Maria – Saudade do Brasil – 1980, 2007, http://www.youtube.com/watch?v=UvbiZP18it0.
  2. Taky Ongoy y Maria maria/ Mercedes Sosa, 2008, http://www.youtube.com/watch?v=3lRW8XKX7NU&feature=youtube_gdata.

휴대전화 없는 생활로 돌아가기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신경쓰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부분을 없앨 만할 실천을 하는 것이다. 당장 할 수 없다면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 생각을 바꾸어서 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 적어도 신경을 쓰는 것만이라도 그만두든가. 어쨌든 마음에 걸리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에게 좋을 일은 없다. 게다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는 십중팔구 자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는 자의식까지 생겨 버려서, 고민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 (( 많은 예술 작품이 이런 갈등에서 나왔겠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고 꼭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 )) 😛

휴대전화를 쓴 지 이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물건을 사용하는 나 자신에게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어서, 마음 편해지려고 사용을 해지했다. 만족스럽다.

덧붙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없다. 처음부터 그 물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 휴대전화를 쓰는 데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없어도 연애에는 지장이 없다. 적어도 나는 항상 그랬다. 😀

인터내셔널가 편곡 스케치

전에 다른 포스트에 올린 적이 있지만, 링크가 바뀌어서 새 포스트로 쓴다.

  1. (2007년 3월 30일) 기타 속주
    http://frozenfiremeidi.net/mus/20070330_internationale_rock.mp3
  2. (2007년 3월 30일) 나름대로 스카
    http://frozenfiremeidi.net/mus/20070330_internationale_ska.mp3
  3. (2008년 8월 16일) 하프시코드, 플루트, 바순 삼중주
    http://frozenfiremeidi.net/mus/20080816_internationale_trio.mp3
  4. (2008년 8월 29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에스파냐어로 불러야 될 듯한 것
    http://frozenfiremeidi.net/mus/20080829_internationale_latin.mp3

언젠가는 열 개를 채울 날이 오겠지. 실제로 연주해 볼 기회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