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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자보: R‧EVOLUTION 선본원 여러분께

`교수님들과 노동자들’이라는 말을 쓰시면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자연스럽게 나온 표현입니까? 아니면 괜히 과격한 인상을 남겨서 학우들의 배척을 받을까 봐 한쪽에 `님’을 붙이고 다른 한쪽에 `동지’를 빼어서 완화시킨 표현입니까? 어느 쪽이든, 정말 이분들을 모두 같이 연대할 대상으로 보았다면 한쪽에만 존칭을 쓸 수 있었을까요? 물론, 매주 몇 시간씩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선생님들을 존경할 기회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학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하시는 분 중에서 교직에 계시는 분들께 특별히 개인적으로 존경심이나 친근감을 더 느낀다고 해서, 그분들이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통념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오히려 그 통념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9년 11월 6일 금요일 구름 약간
인문대학+자연과학대학 4학년 /ti/ 드림

어차피 읽을 사람도 없을 테니까 안심하고 게시판에 붙였다. 하지만 나도 표현을 완화해 버렸네요 데헷☆

심각한 발랄

즐거운 것은 즐겁고 지겨운 것은 지겹다. 여기에는 달리 덧붙일 말도 없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즐거운 것은 옳고 지겨운 것은 그르다고 생각한 나머지 의무감을 가지고 발랄해지려고 한다. 신나는 것을 만들겠다고, 즐거운 집단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선언한다. 심지어 `엄숙함을 미처 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일까지 있다. 그들은 재미없다는 말을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골치 아프게도, 발랄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도 어렵다. 기껏 말을 해도 그들의 반응을 보면 “발랄함이라는 것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대의인데, 지금 너희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므로 못난 사람들이다.” 정도 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라텍 대활약

언어학 문서를 라텍으로 작성할 때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점을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

  • 국제음성기호를 넣을 때 문자표를 따로 불러와서 원하는 기호를 일일이 찾고 복사한 다음 붙여 넣을 필요 없이, 본문을 입력하는 그대로 원하는 자리에 기호의 이름(\textesh, \textopeno 등)을 쓰면 된다.
  • 본문에 예문을 인용할 때 예문의 번호를 직접 입력하는 대신 각 예문에 자기가 붙인 라벨 이름을 쓰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예문을 삽입해서 예문 번호가 바뀌더라도 본문에 인용된 번호를 일일이 찾아서 고칠 필요가 없다.
  • 수형도를 그릴 때 다른 워드 프로세서에서처럼 각 노드의 위치를 정하고 일일이 선을 긋지 않는다. [ [meidi].NP [ [needs].V [ [some].D [love].NP ].DP ].VP ].S 처럼 문장 성분의 구조를 대괄호로 묶어 주면 저절로 수형도가 된다.

자기가 키보드로 입력하는 내용과 나중에 출력물에 나타날 모습이 같지 않다는 데서 오는 낯섦만 극복하면 직관에 들어맞는 문서를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언어학 책이나 논문을 읽고 발표나 토론을 할 때 `11번 예문’처럼 예문의 번호를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상원의원 예문’, `froze 예문’처럼 각 예문의 특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더 많다. 중간에 다른 예문을 추가한다고 해서 우리가 예문을 기억하는 방식이 바뀌지도 않는다. 라텍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학기에 듣는 언어학과 전공 수업에서 발표문을 만들 때에도 라텍의 언어학 패키지를 활용할 일이 많았다.

  1. tipa의 활약: [응용음성학] 북경어의 모음
    http://frozenfiremeidi.net/blog/wp-content/uploads/2009/10/mandarin-vowel.pdf
    국제음성기호로 제3성을 표시하는 것은 유니코드를 지원하는 입력기에서조차 쉽지 않다.
  2. qtree와 gb4e의 활약: [언어학연습 2] 한국어와 영어의 결과구 형성에 대한 제약
    http://frozenfiremeidi.net/blog/wp-content/uploads/2009/10/resultative.pdf
    발제하려고 읽은 논문부터 라텍으로 작성되어 있다. (( Jong-Bok Kim, “Constraints on the formation of Korean and English resultative constructions,” in PROCEEDINGS-NELS, vol. 29, 1999, 137–152. ))

quasi-언어학 스니커

스텐실을 곡면에 찍기는 쉽지가 않았지만 마침내 해냈다. 나무 그림은 청*고 치약을 참조했는데, 가지를 이렇게 배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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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물건이 어째서 quasi-언어학 아이템이 되나요?

대답: 신발을 신은 쪽에서 보면 각 가지 끝이 왼쪽부터 NP, V, NP에 대응하니까, SVO 어순에서 타동사 문장의 수형도가 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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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티셔츠: 언어학자 이도 선생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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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리미를 사 버렸다. 지폐 그림은 열전사, 글씨는 스텐실로 찍었다.

이 도안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점이 두 가지 있다.

  1. 실물 지폐를 확대해서 찍어도 괜찮을까?
  2. 한글이 `세상에서 제일 우수한’ 문자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어쨌든 이 티셔츠는 어느 학부생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사실은 이 친구에게 선물할 작정으로 생각해 낸 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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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티셔츠: 사순흡착음 티셔츠 착용사진

원래는 여러 사람에게 같은 도안을 제공하지 않지만, 유학을 떠나는 선배에게는 예외로 해도 될 것 같다. 그쪽 사람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려고 한자까지 힘들여서 찍었다. 😛 드디어 제가 만든 도안이 미 합중국의 대도시까지 진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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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티셔츠: 언어학자가 입고 있어요

#0 학생으로서 `언어학자’를 자처할 생각은 없지만, `언어학도’는 너무 느끼하고 `언어학과 학생’은 너무 길어서 그냥 `언어학자’로 했다. `언어학자가’와 `입고 있어요’ 사이에 `되고 싶은 꼬꼬마가’를 작게 쓸까도 하다가 `꼬꼬마’가 디씨스럽다는 지적이 있어서 그만두었다.

#1 어느 대학원생에게 준 생일선물: 물론 `아기가 타고 있어요’에서 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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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른 대학원생에게 준 생일선물: 학내에서 본 자동차 뒤에 `BABY IN CAR’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따 왔는데, #1보다 약해 보여서 `언어학자 재중’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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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군가가 `WARNING: SHIRT CONTAINS LINGUIST’라는 문구를 제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셔츠 속에 언어학자가 들어 있다고 해서 조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철학자나 수학자라면 모를까. 😛

입문대학 어느학과

개인적으로 배척하는 개그 패턴이 두 가지 있다.

  1. 자기비하: 몸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자기를 비하하는 것.
  2. 동음이의어: 발음의 유사성만 가지고 단어를 바꾸어 쓰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저런 식의 개그를 시도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규탄해 온 나로서는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차마 `입문대학 어느학과’라는 말을 꺼내거나 포스팅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이야기해볼 만하다.

  1. 어느학과 (2006년 봄)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첫 전공과목의 첫 시간에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이 있다. “누가 과를 물어볼 때 언어학과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이 언어학과가 있는 줄 잘 모르니까 `어느 학과’라고 반문했다고 오해할 때가 있었어요.”
  2. 입문대학 (2009년 봄)
    아마 기말고사 기간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배달 음식을 시켰다. 학내 지리에 밝은 주변 음식점으로 전화를 걸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몇 번씩이나 배달 위치를 다시 말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딱히 못 알아들을 말도 없는데 왜 그럴까 하면서 계속 인문대학[임문대학]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런 일은 처음 겪어 보아서 음식이 제대로 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배달원은 익숙하게 찾아왔다. 밥을 다 먹고 친구와 돈을 나누려고 영수증을 보니까, 배달 장소가 **대학교 입문대학이라고 적혀 있었다. 뭐, 조음 위치 동화가 표준 발음은 아니니까 [임문대학]으로 오해를 산 것도 내 탓이기는 하다 OTL

언어학과가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은 당연할 정도이지만, 인문대학까지 듣보잡이라니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