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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술자리개그/ [[사기]] [골계열전] 일부

Serotonin 님과 트윗을 주고받다가 술은 같이 마시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아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젯밤 술김에 신나서 번역하다가 어려운 한자가 많아서 그냥 저질 언어학 개그로 넘어갔는데, 오늘 사전을 찾아가면서 나머지 부분을 옮겼다. 순우곤 이 아저씨, 즐거운 술자리를 실컷 상세하게 묘사한 다음 정색을 하고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는 거죠.’라고 수습하다니, 참 치사해서 사랑스럽다. 게다가 그 결과로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니 부럽기 짝이 없다.

+물론 이 저질개그 자체는 Serotonin 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제(齊) 위왕(威王)은 매우 기뻐하면서 후궁에서 주연을 베풀고는 순우곤을 불러서 그에게 술을 하사했다.

“선생은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가?”

“저는 한 말(1.94리터)로도 취하고 한 섬(=열 말=19.4리터)으로도 취합니다.” (( http://ja.wikipedia.org/wiki/斗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을 보면 1말이 주(周)대에는 1.94리터, 진(秦)대에는 3.43리터라고 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전국 시대니까 주를 기준으로 했다. ))

위왕이 물었다.
“선생이 한 말을 마시고 취한다면 어떻게 한 섬이나 마실 수 있겠나! 그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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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 [[법언]]

양웅은 서한 말의 `언어학자’라는 설명 때문에 이름만 기억해 둔 정도였다. 여러 해 동안 그 상태에 있다가 2009년 2학기 늦가을이 되어서야 [[법언]]을 읽어 보았다. 시험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흥미가 300% 증가할 때인데도 정말 재미가 없었다. 다음에는 언어학자로서 썼다는 [[방언]]을 보아야겠다.

한문 원문은 자유문고에서 나온 번역서(최형주 역, 1996년 출간)에서 가져 왔고, 한국어로는 내가 따로 옮겼다.

[10. 중려(重黎)] 중에서
或問: “趙世多神, 何也?”
누군가가 물었다.
“조 시대에 신비한 일이 많았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번역서에는 진(秦) 왕실이 조(趙)씨였다는 점에서 `진대에’ 신비한 일이 많았다고 되어 있지만, 나는 [[사기]]의 [조세가]가 먼저 떠올랐다. 진, 조 중 어느 쪽이든 [[사기]]의 [본기]와 [세가]에서 웬만한 괴담은 [진(秦)본기], [진시황본기], [고조본기], [금상(=무제)본기], [조세가]에 집중되어 있어 있었던 것 같다. 진 시황이나 한 고조는 창업 군주에게 갖다 붙이는 전설만 해도 상당할 터이고, 또 진 시황과 한 무제가 워낙 신선에 집착했으니까 창작 괴담이나 방사에게 사기당한 이야기가 충분히 있을 만하다. 결국 [조세가]만 붕 뜨는 기분이다. 다른 제후국의 [세가]에는 괴담이 거의 없다. 진 시황의 어머니가 조 출신이라서 분서갱유 때 조의 역사책만 남겨 놓았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지만, 아무래도 그럴듯한 설명은 아니다.

어쨌든 여기서, 나도 궁금했어요. 왜 조에만 신비한 이야기가 많을까효? 드디어 답을 얻을 수 있는 거야? 두근두근…… 잠깐, 여기서 `子罕言怪力亂神, 선생님께서는 괴담이나 폭력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논어]] [자한])) 라고 하면 반칙이야. 실망할 거야. 삐칠 테야.

(계속)
曰: “神怪茫茫, 若存若亡, 聖人曼云.”
대답했다.
“귀신 이야기나 괴담은 아득해서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성인께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OTL

양웅이 한 무제의 증손자인 선제 때 살았으니까, 무슨 문제를 들고 와도 공자님 말씀으로 아닥시키는 것이 무려 서한 후반부터 가능했다는 말이군효ㄷㄷㄷ

그래도 저자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조금 재미있었다.

[12. 군자] 중에서
乍出乍入, 淮南也; 文麗用寡, 長卿也; 多愛不忍, 子長也. 仲尼多愛, 愛義也; 子長多愛, 愛奇也.
[대략 유학자가 긍정적으로 볼 만한 어떤 것에] 잠깐 나갔다가 잠깐 들어왔다 하는 이는 회남왕(유안)이다. 문장이 화려하고 쓰임새가 적은 이는 사마상여 선생이다. 애착이 많아서 참지 못했던 이는 사마천 선생이다. 공구 선생이 애착이 많았던 것은 의로운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지만, 사마천 선생이 애착이 많았던 것은 신기한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것에 대해서 못 참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니 남 이야기 같지 않다. 😀

그나저나 수십 년이 지나고 왕충은 [[논형]]에서 공자님 말씀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는데…… 중앙도서관에서 [[논형]]을 빌렸을 때는 도피하기 곤란할 만큼 시험이 닥쳐서 다 읽지는 못했으니까 다음 기회에 보겠어요.

史記, 刺客列傳, 예양 편

예양은 진(晉) 사람이다. 원래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지만 이름이 알려진 일이 없었다. ((진(晉)의 6경: 지, 범, 중항, 한, 위, 조. 지씨가 범씨와 중항씨를 멸망시키고 한씨, 위씨, 조씨가 지씨를 멸망시킨 다음 한, 위, 조의 후손이 진을 셋으로 나누어 가진다.)) 그들을 떠나서 지백을 섬겼더니 지백이 그를 매우 존중하고 아껴 주었다. 지백이 조 양자를 공격하자 조 양자는 한, 위와 함께 지백을 같이 무너뜨리려고 계획을 세웠다. 지백을 멸망시킨 다음에는 그의 땅을 셋이서 나누어 가졌다. 조 양자는 지백에게 가장 큰 원한을 품고 있던 터라서, 그의 머리에 옻칠한 다음 잔을 만들었다. 예양은 산속으로 도망쳐서 이렇게 말했다.

“아!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이를 위해 얼굴을 꾸민다. 지백께서 나를 알아주셨으니까, 나는 반드시 복수를 하고 죽어서 지백께 보고를 드리겠다. 그래야 내 영혼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고치고 징역수로 가장하여 궁궐에 들어가서 변소의 벽을 발랐다. 품 속에 비수를 끼고 양자를 찌를 생각이었다. 양자가 변소에 갔는데 심장이 두근거려서 변소의 벽을 바르는 징역수를 조사해 보니 예양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주위 사람들이 예양을 죽이려고 했지만, 양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니까 내가 조심해서 피하면 된다. 그리고 지백이 죽고 후사가 없는데 그의 신하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다니, 세상에 꼽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다.”

결국 그를 풀어주어서 보냈다.

그 뒤로 예양은 또 자기 몸에 옻칠해서 문둥병자로 가장하고, 숯을 삼켜서 목을 쉬게 하는 등 자기 형상을 못 알아보게 하였다. 시장에서 구걸하면서 돌아다녔는데 그의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의 친구를 보러 가자 친구가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너 예양 아니야?”

“나 맞아.”

친구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너는 재능이 있으니까, 예물을 바치고 신하가 되어서 양자를 섬기면 양자는 분명히 너를 가까이 두고 잘해줄 거야. 그가 너를 측근으로 두고 신임하게 되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하기 쉽지 않을까? 자기 몸을 잔인하게 학대해 가면서 양자에게 복수하려고 하다니 어떻게 어렵지 않을 수 있겠어?”

예양이 대답했다.

“남에게 예물을 바치고 신하가 되어서 섬긴 다음에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면, 자기 임금을 섬기면서 두 마음을 품는 일이야. 지금 내가 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지. 하지만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서 다음 세대에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임금을 섬기는 놈들을 부끄럽게 만들겠어.”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양자가 밖에 나갈 때, 예양은 양자가 지나갈 다리 아래에 숨어 있었다. 양자가 다리에 도착하자 말이 놀랐다.

“이것은 분명히 예양 때문이다.”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았더니 역시 예양이었다. 그래서 양자는 예양을 책망하였다.

“그대는 예전에 범씨와 중항씨를 섬기지 않았나? 양자가 범씨와 중항씨를 모두 멸망시켰지만, 그대는 원수를 갚기는커녕 지백에게 예물을 바치고 그의 신하가 되었지. 지백도 이미 죽었는데 그대가 지백만을 위해서 복수하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집요한가?”

예양이 대답했다.

“제가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지만,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저를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대우해서 저도 그저 그런 사람처럼 그들에게 보답했습니다. 지백께 갔더니 그분께서 저를 나라의 인재로 대우해 주셨기에 저도 나라의 인재로 그분께 보답하는 것입니다.”

양자는 아득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울면서 말하였다.

“아, 예 선생! 그대가 지백을 위하는 것은 명분이 섰지만 내가 그대를 용서하는 것도 이미 할 만큼 했다. 그대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라, 나는 그대를 다시 석방하지 않는다!”

병사들에게 예양을 포위하도록 하였다. 예양이 말하였다.

“저는 현명한 군주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숨기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명분을 위해 죽는 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군주께서 저를 관대하게 용서하셔서 온 세상 사람들이 어질다고 칭송합니다. 오늘 일로 저도 죽음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군주의 옷을 얻어서 치면, 그래서 복수의 뜻을 다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마음을 털어놓아 봅니다.”

양자는 매우 의롭다고 생각하여 심부름꾼에게 자기 옷을 넘겨서 예양에게 주었다. 예양은 칼을 뽑고 세 번 뛰어올라서 옷을 쳤다.

“내려가서 지백께 보고를 드릴 수 있겠다!”

그리고는 칼 위로 엎어져서 자살하였다. 그가 죽은 날, 조의 뜻있는 이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사마천, [[사기]] [제26권 자객열전] http://www.xysa.net/a200/h350/01shiji/t-08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