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는 이름으로 이 블로그에 자주 리플을 달던 친구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언어학과 대학원생으로, 내가 기생 중인 대학원생 연구실에 있는 선배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원생 연구실에 기생하기 전부터 온라인 모처에서 활동하는 아이디의 주인이 같은 과 원생 k라는 것을 우연히 알고 있었고, 나중에 그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면서 말을 트게 되었다. 자기에게 존댓말을 쓰는 연소자에게 절대 일방적으로 반말하지 않고 너나들이를 지향한다는 점이 나와 같아서 빠른 속도로 친해졌다. 둘 다 인터넷 폐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공유할 어휘나 화제가 많았고, k는 공과대학 학부 출신이었고 나는 자연과학대학에서 복수전공을 하는 덕에 수학이나 과학 이야기도 조금은 했으며, 내 언어학 개그에 웃어 주는 것으로 보아서 개그 센스도 어느 정도는 비슷했던 것 같다. k는 어머니 탈상 후 연구실에 다시 나온 뒤로 나와 같이 만담을 하면서 츳코미 역할을 했고, 둘이서 고양이 귀 머리띠를 쓰고 학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젯밤 연구실에서 k는 다음날 있을 언어학과 강연회에서 발표될 논문에 나오는 미분방정식을 풀어 달라고 나에게 조르고는 내가 메이플로 그려 준 그래프 이야기를 함께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연구실에 남아서 자정을 조금 넘겼을 무렵 그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구글 토크로 잠시 대화했다. 밤을 꼬박 새운 다음 오전에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학교에 다시 가기가 싫었지만, 강연회 때문에 억지로, ‘내가 오늘 왜 학교에 가고 있지?’하고 투덜거리면서 갔다. 강연은 재미있었고 매우 많은 사람이 참석했지만, k는 강연회 자리에도 연구실에도 없었다. 강연회 후 저녁을 먹고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k의 번호로 나에게 “연락 바랍니다”라는 문자가 왔을 때도, 평소에 서로 반말을 하면서 장난삼아 존댓말을 섞어 쓰던 터라 별 의심 없이 전화를 걸었다. k의 형이 부고를 알렸다. 나에게 연락한 것은 마침 내 번호가 그의 휴대전화 최근 기록에 남아 있어서였을 터이다. 연구실에 소식을 전했다. `내가 이것 때문에 학교에 나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금기어에 대한 완곡한 표현을 비웃어 온 편이지만, “k가 죽었대요.”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장례식장은 두 달 전에 왔던 그의 어머니 빈소와 같은 병원이었다. 영정 사진의 머리 모양을 보니까 며칠 전 그가 자기 홈페이지에 올렸던 중학교 때 사진 같았다. 서른 살 먹은 아저씨의 영정에 십대 시절 사진을 쓸 만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오히려 연구실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그의 부재가 제대로 실감 날 터이다.
애도하는 이는 책상이나 지팡이를 보고 울기도 하고, 수레나 옷에 눈길이 가는 것으로도 슬퍼한다. 사람은 없는데 물건은 있음을 느끼고, 사연은 생생한데 형체는 사라졌음을 아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모두 계기가 있어서이지, 땅에 닿는다고 슬픔이 생기거나 자리에 앉는다고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夫言哀者,或見機杖而泣,或睹輿服而悲,徒以感人亡而物存,痛事顯而形潛,其所以會之,皆自有由,不為觸地而生哀,當席而淚出也。
혜강, [[성무애락론]] 중에서 http://zh.wikisource.org/zh-hant/%E5%A3%B0%E6%97%A0%E5%93%80%E4%B9%90%E8%AE%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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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_트위터를 그만두고 블로그에서 본격 언어학 개그를 재개하려고 하자마자 가장 중요한 독자이자 비평가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伯牙의 知音 흉내를 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언어학 개드립을 칠 맛이 날 것 같지 않다.
덧붙임 #2_이제 k의 모습이 있을 수 있는 곳은 사람의 기록과 기억밖에 없다. k도 ‘다른 세상’을 믿었던 것 같지는 않다.
덧붙임 #3_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 온라인에서 찝쩍거려 준 변태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