嵇康, 與山巨源絶交書

2008년 12월 20~21일
[산도 선생에게 보내는 절교장]

1.

혜강입니다. 예전에 영천 태수에게 내가 벼슬할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지요. 나는 항상, 그 말이 나를 잘 알아서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벼슬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그대에게 충분히 알려진 적이 없는데 그대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작년에 하동에서 돌아왔을 때 그대가 그대의 자리에 나를 앉히려고 논의했다는 이야기를 공손숭 선생과 여안 군에게 들었습니다. 그 일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대가 처음부터 나를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데다가, 웬만한 일은 관용을 베풀 수 있고 책망하는 일이 적습니다. 그러나 나는 직설적이고 마음이 좁아서 참아낼 수 없는 것이 많고, 그대와는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대가 승진했다는 소식을 요사이에 듣고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요리사가 혼자 도살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축문 읽는 사람을 끌어들여서 자기를 거들어 손에 칼을 잡고 짐승 비린내로 몸을 더럽히게 만든다고 하는데, 그대도 그렇게 할까봐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하나하나 설명하겠습니다.

2.

예전에 책을 읽다가 모든 미덕을 갖춘 인물이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런 인물은 없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이제서야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못 참는 것이 있으면 절대 억지로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공론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세상 일에 통달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통달한 인물은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고, 겉으로 보아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세상의 조류에 함께 하고 회한을 품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자와 장자는 나의 스승인데 보잘것없는 직업에 몸소 종사하였고, 유하혜와 동방삭은 통달한 사람인데도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만족하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감히 그분들을 얕잡아 보겠습니까! 또 공자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였고 마부가 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문은 경이나 재상이라는 지위를 원하지 않았지만 세 번이나 영윤(초의 재상)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세상을 돕기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이른바 통달은 모든 대상에게 선의를 품으면서 생각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자, 곤란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만족하고 번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실로 관찰하면 요와 순이 세상의 임금으로 있었던 것, 허유가 바위 틈에 숨은 것, 장량 선생이 한을 보좌한 것, 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닌 것 등은 모두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군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자신의 뜻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의 여러 행동을 보면 가는 길은 각기 다르더라도 지향점은 일치합니다. 바로 본성을 따라 움직이고, 각자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은 사표를 쓰는 일이 없고 산으로 올라간 사람은 되돌아오는 일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릉 계자가 자장의 풍격을 높이 평가하고 사마상여 선생이 인상여의 꿋꿋한 태도를 우러른 이유는 그들을 지탱하는 뜻과 정신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상자평과 대효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감개하면서 그들을 흠모하고 그들의 됨됨이를 떠올려 봅니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님을 여의고 어머니와 형의 귀여움만 받느라 유가 경전은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또 성격이 허술하고 게으르며, 근육은 물렁거리고 살은 축 늘어졌습니다. 얼굴은 언제나 한 달 보름이 되도록 씻지도 않는데 그다지 가려운 줄도 모르겠고 목욕을 할 마음이 들지도 않습니다. 항상 소변이 보고 싶어도 참고 앉아 있다가 뱃속에서 거의 출렁거릴 때가 되어서야 일어납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산 지가 오래 되어서 마음가짐이 건방진 주제에 끈기도 없습니다. 형식을 따지지 않는 성격과 세상의 예의는 상충하지만, 게으름과 태만함은 서로 잘 맞아서 비슷한 무리들에게는 너그러운 대우를 받고 잘못을 공격받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장자]]와 [[노자]]를 읽고 방종하는 버릇이 더 심해져서 생산적인 일을 해 보려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없어지고 현실을 내버려 두려는 생각만 점점 커져 갑니다. 이것은 사슴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사슴이 어렸을 때 훈육을 받으면 조련과 제약에 복종하지만, 다 크고 나서 굴레를 채우면 머리를 맹렬히 흔들면서 끈을 풀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금재갈로 꾸미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더라도 오히려 그럴수록 울창한 숲을 그리워하고 무성한 풀을 생각합니다.

3.

완적 선생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나도 늘 그분을 본받고 싶지만 잘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분은 타고난 성품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서, 술을 조금 지나치게 마시는 것 이외에는 매사에 흠을 잡을 수 없습니다. 예법을 지킨다는 선비들은 그분을 탄핵하고 원수라도 진 듯 미워하지만 다행히도 대장군이 그분을 보호해 줍니다. 나는 완적 선생보다 자질이 떨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게으르고 안이하다는 결점이 있고,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것도 잘 모르며, 요즘 세상의 정세에도 어둡습니다. 만석군처럼 신중하기는커녕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버리기를 좋아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다가, 일을 해 본 지도 오래 되었고, 못된 습관과 불화만 나날이 심해지는데, 걱정거리가 없기를 바라더라도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또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조정에는 따라야 할 법이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러한 예법 중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 일곱 가지와 절대로 불가능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나는 드러누워서 늦잠 자기를 즐기는데 수위가 불러 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첫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점입니다.
  2. 내가 거문고를 끼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다니거나 들판에서 사냥과 낚시라도 하려고 하면 동료나 부하 직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엉뚱한 짓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두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점입니다.
  3. 나는 잠시만 정좌를 해도 다리가 저려서 움직일 수 없고 몸에 이가 많아서 긁어 대기를 멈출 수 없는데 제복 속에 파묻혀서 상관 앞에서 손을 맞잡고 허리를 조아리거나 몸을 엎드려서 절을 드려야 하는 것이 세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점입니다.
  4. 나는 원래 편지 받기를 불편해하고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일이 많아서 책상 위에 편지가 쌓이고, 답장을 하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나고 의리를 저버리게 되니까 어떻게든 억지로 써 보려고 해도 결국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 네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5. 나는 상가에 문상 가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사람들 사이의 도덕에서는 그런 것을 중시하므로 용납해 주지 않는 사람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어 헐뜯김을 당할 것입니다. 아무리 진지하게 자책해 보아도 성격은 바뀌지 않고, 마음을 억누르고 세상에 고분고분하려고 하면 본성에 어긋나게 됩니다. 이렇게 소인배들에게 비난도 칭찬도 받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다섯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6. 나는 세상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반드시 참여해야 할 공동 작업이 생기거나 손님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떠드는 소리가 귀에 요란스럽게 울리는 시끄럽고 역겨운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 앞에서 갖가지 재주를 부려야 하는 것이 여섯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7. 나의 본심은 번잡한 것을 참을 수 없는데 관청의 사무로 손이 묶이고 기밀 업무에 마음이 얽매이며 인간 관계로 생각이 답답해지는 것이 일곱 번째로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1. 나는 항상 탕과 무왕을 비난하고 주공과 공자를 대단찮게 여깁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감출 수 없을 터인데 이런 일이 알려지면 세상의 통념에 수용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이유 첫 번째입니다.
  2. 나는 성질이 억세어서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질색을 하고 그저 내키는 대로 경솔하게 행동할 뿐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할 줄은 모르는데다가 일이 생기면 곧바로 말을 내뱉아 버립니다. 이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이유 두 번째입니다.

나의 째째한 성격 탓에 이렇게 아홉 가지나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깥에서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 속에서 병이 생길 것인데 어떻게 사회 생활을 오래 할 수 있겠습니까?

4.

또 나는 도가에서 삽주나 죽대 같은 풀을 먹으면 사람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전하는 말을 듣고 진심으로 믿고 있고, 산이나 연못에서 노닐면서 물고기와 새들을 관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일단 관청에서 일하게 되면 이런 것들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어떻게 좋아하는 것을 버리고 싫어하는 것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5.

사람을 알아 준다는 것은 그의 천성을 존중하고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우는 백성자고를 괴롭히지 않고 그의 꿋꿋한 태도를 전적으로 인정해 주었으며, 공자는 자하에게 우산을 빌리지 않고 그의 단점까지 비호해 주었습니다. 최근의 예를 들면 제갈량 선생은 서서 선생을 억지로 촉으로 오게 하지 않았고, 화흠 선생은 관녕 선생을 강제로 재상이 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곧은 나무로 수레바퀴를 만들 수 없고 휘어진 나무로 직육면체 상자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그대도 보았을 것입니다. 타고 난 자질을 굽히고 싶지 않아서 자기 용도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 농, 공, 상은 직업을 가지고 각기 지향점을 찾아서 즐깁니다. 통달한 사람은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만큼 그대도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겠지요.

나 자신이야 장포라는 모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강인한 월 사람들은 그것을 번듯한 관으로 씁니다. 또 썩는 냄새를 싫어하더라도 원앙을 기르려면 죽은 쥐를 먹여야 합니다. 나는 최근 양생술을 공부하여 화려한 명예를 멀리 하고 재미를 잃은 채 적막한 데서 마음을 노닐게 하고 무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아홉 가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대가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또 마음의 근심과 걱정이 요즘 들어 점점 심해집니다. 혼자 자문해 보아도 역시 즐기지도 않는 일을 견딜 수는 없습니다.

나의 생각을 고찰해서 이미 설명을 마쳤습니다. 가던 길이 막히면 멈추면 될 뿐 그대가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억지로 가 보았자 구덩이에 빠집니다.

6.

나는 최근에 어머님과 형님의 사랑을 잃어서 늘상 처절한 기분입니다. 또 열세 살 난 딸과 여덟 살 먹은 아들은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병치레까지 잦으니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소원은 변변치 못한 집이라도 지키면서 자손을 기르다가 이따금 친구들에게 격조했던 소식이나 전하고 탁주 한 잔을 기울이며 거문고 한 곡을 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대는 끝도 없이 나를 강요하기보다는 관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구해서 요즘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대는 내가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으며 성격이 거칠고 매사에 소홀해서 사회 생활에 맞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지요.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나는 모든 점에서 요즘 세상의 유능한 인재보다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명예롭고 화려한 인생을 좋아한다고 해도 혼자 떨어져 나올 수 있음을 기뻐하는 것, 이것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은 모든 것에 통달했기 때문에 세속적인 꾀를 부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므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질병과 걱정이 많아서 일거리에서 떠나 나 자신을 건사하면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통달은커녕 모자란 것뿐입니다. 거세된 환관을 보고 동정을 지킨다고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굳이 나와 함께 벼슬길에 오르려고 하는데, 서로 마음이 맞아서 날마다 즐거워지면 좋겠지만 나는 일단 압박을 받으면 어김없이 난폭한 성질이 도집니다. 나에게 깊은 원한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면 이러한 상황으로 이끌지 않는 법입니다.

7.

등에 햇볕이 내리쬐는 것이 상쾌하고 미나리가 맛있다고 생각한 시골 농부가 임금에게 그것을 바치고 싶어했다고 하지요. 정성에서 우러나온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벌써 멀어졌습니다. 그대도 그 농부 같은 일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제 뜻이 이러한 것은 이미 그대에게 충분히 풀어 놓았으니 이제 결별을 고합니다.
혜강 씀.

혜강 [산도 선생에게 보내는 절교장] http://59.42.244.63:8088/datalib/2003/Literature/DL/DL-18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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