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신경쓰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부분을 없앨 만할 실천을 하는 것이다. 당장 할 수 없다면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아니면 자기 생각을 바꾸어서 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 적어도 신경을 쓰는 것만이라도 그만두든가. 어쨌든 마음에 걸리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에게 좋을 일은 없다. 게다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는 십중팔구 자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는 자의식까지 생겨 버려서, 고민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 (( 많은 예술 작품이 이런 갈등에서 나왔겠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고 꼭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 )) 😛
휴대전화를 쓴 지 이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물건을 사용하는 나 자신에게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어서, 마음 편해지려고 사용을 해지했다. 만족스럽다.
덧붙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없다. 처음부터 그 물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 휴대전화를 쓰는 데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없어도 연애에는 지장이 없다. 적어도 나는 항상 그랬다. 😀
`교수님들과 노동자들’이라는 말을 쓰시면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자연스럽게 나온 표현입니까? 아니면 괜히 과격한 인상을 남겨서 학우들의 배척을 받을까 봐 한쪽에 `님’을 붙이고 다른 한쪽에 `동지’를 빼어서 완화시킨 표현입니까? 어느 쪽이든, 정말 이분들을 모두 같이 연대할 대상으로 보았다면 한쪽에만 존칭을 쓸 수 있었을까요? 물론, 매주 몇 시간씩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선생님들을 존경할 기회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학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하시는 분 중에서 교직에 계시는 분들께 특별히 개인적으로 존경심이나 친근감을 더 느낀다고 해서, 그분들이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통념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오히려 그 통념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9년 11월 6일 금요일 구름 약간
인문대학+자연과학대학 4학년 /ti/ 드림
어차피 읽을 사람도 없을 테니까 안심하고 게시판에 붙였다. 하지만 나도 표현을 완화해 버렸네요 데헷☆
즐거운 것은 즐겁고 지겨운 것은 지겹다. 여기에는 달리 덧붙일 말도 없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즐거운 것은 옳고 지겨운 것은 그르다고 생각한 나머지 의무감을 가지고 발랄해지려고 한다. 신나는 것을 만들겠다고, 즐거운 집단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선언한다. 심지어 `엄숙함을 미처 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일까지 있다. 그들은 재미없다는 말을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골치 아프게도, 발랄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도 어렵다. 기껏 말을 해도 그들의 반응을 보면 “발랄함이라는 것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대의인데, 지금 너희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므로 못난 사람들이다.” 정도 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frozen fire, rose water dr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