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생이라서 행복해요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수식이나 기계를 다루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학생이라는 존재가 꼭 이공계 남학생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문대학만 하더라도 그런 여학생들이 뜻밖에 많다. 1 나는 초 치기를 즐기는 사악한 인간이라서 그런 환상을 방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예를 들면, 공책에 수식을 쓰면서도 전혀 멋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 몸으로 입증한다든가. ;-) 아니면 가끔은 직접인용도 한다.

어제 현대대수학 수업 시작 전에 강의실에서 남학생 몇 명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공계를 통틀어서 제일 `뭔가 있어 보이는’ 학과였지만, 구체적으로 전공이 드러날 만한 대화는 별표로 가렸다.

- (아벨은) 지금 우리 나이보다 어렸는데.
- 나는 아직 일 년 남았어.
- 그럼 넌 그 일 년 동안에 그만한 걸 해야지.
- ** ***는 만들어야 그 정도가 될걸.
- 갈루아는 더 빨리 죽었잖아.
- 남들이 스물두 살에 배우는 걸 자기가 스물두 살에 다 만들었어.
- 어떻게 오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다가 군이라는 것을 생각해 낼 수가 있었지? 신기해.
- 결투하다가 죽었다면서.
- 사랑 때문에.
- 멋있다.
- 너도 빨리 ** *** 만들고 멋있게 죽어.
- 암살당해.
- 내가 암살할게.

마지막 몇 줄이 좀 유치하기는 해도 여기까지는 오히려 인문대 여학생들의 로망을 자극할 법도 하다. 그러나 아벨과 갈루아에 대한 찬탄은 조금 뒤에 인용할 말과 기막히게 대비된다.

수업 중에 교수가 noetherian을 설명한 다음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여성이 수학에 약하다는 것은 편견이에요. 에미 뇌터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성 수학자가 많이 있어요.” 아까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일 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나에게까지 들릴 만한 소리로 자기 무리에게 말했다.

“그런데 뇌터는 외모가 여자가 아니잖아.”

그렇지 않아도 자연대 남학생에 대한 인문대 여학생의 로망에 소금을 못 뿌려서 안달이었는데 이렇게 몸소 소스를 제공해 주시니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P

[반론 #1] 저런 사람은 일부일 뿐이잖아요?
[답변 #1] 선량한 자연대생 개인은 많아도 집단 전체의 분위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데요. 속으로 건전한 생각을 하고 있어도, 실제로 저 친구를 말리고 나설 사람은 거의 없다는 데 한 표를 겁니다.

[반론 #2] 저런 남자는 인문대에도 있잖아요?
[답변 #2] 물론 저런 남자는 어느 단대에서든 배척해야죠. 하지만 적어도 인문대 학부 남학생이 전공 수업에서 대놓고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잖습니까. 몇몇 교수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리고 과방이나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보통 고시나 전과 등 인문대 밖으로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하지만 저쪽에서는 평소에 눈을 반짝거리면서 전공 이야기를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저러고 있잖아요.

[덧붙임 #1] 인문대에 만연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이 어이없다는 이야기를 언젠가는 해 보고 싶었는데, 저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반대쪽 포스팅을 먼저 하게 되었다.

[덧붙임 #2] 결투로 죽었다는 이유로 멋있게 보이는 갈루아는, 아마도 그 친구들이 경멸 해마지 않았을 `폭력시위’에 참가했다. 아니, 그렇게 아는 것이 많은 친구들이 그 정도도 모를 리 없다. 유독 용산의 철거민들이나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만을 폭도로 취급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가보다.

  1. 공대생의 이미지에 거부감을 가진 여학생들도 많다. 환상과 거부감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세어 볼 생각은 없다. []

Comments 1

  1. ㅍㄱ wrote:

    꼬꼬마친구들의 철없는 농담에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
    아울러 반정도 꼬꼬마의 철없는 코멘트에도

    Posted 27 Oct 2009 at 00:26

Post a Comment

Your email is never published nor shared.